다시 달리는 애마, 음란물에서 고발물로 재탄생한 팩션 코미디
인터넷과 스마트폰 그리고 최근에는 AI의 발전으로 인해 이제는 공짜로 마음껏 음란물을 누리다 못해 이제는 입맛에 맞게 커스터마이징까지 하며 음란물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그러니 80년대 이전 존재했던, 여배우의 나체와 직접적인 성관계 장면 없이 간접적으로나마 대중들의 성에 대한 욕망을 채웠던 ‘에로 영화’라는 장르는 역사박물관에서나 필요할 것 같은 유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2025년인 지금, 소위 ‘에로 영화’의 대표격인 <애마부인>은 이제 그저 성욕을 자극하기 위한 음란물이 아닌 당시의 대중문화, 성, 예술 그리고 사회상을 이야기하는 모티브로써 다시 생명을 얻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마>는 <애마부인 시리즈>를 모티브로 하되, 애마부인 영화 자체에 대한 리메이크가 아닌 화려한 조명 뒤에서 영화 제작과 연기 그리고 개봉 등을 두고 벌어지는 갈등과 암투를 그린 팩션이다. 19금이어서 당연히 다소의 선정적인 장면은 있고 역시나 구글링해보면 애마 좌표 등 한국남성들이 남겨 놓은 흔적들이 먼저 눈에 띈다. 남성 제작자가 여성의 성을 논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결국 남성들에게 또 다른 성욕의 대상으로 소비되고 만다는 혐의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그 자신이 커밍아웃한 게이이자
<천하장사 마돈나>로 이름을 알린 이해영 감독은 전작 <유령>에서 악역은 모두 남성 캐릭터이고 여성 캐릭터들은 멋있다는 논란(?)의 전적이 있으며, 이번 <애마>
시리즈에서도 입체적인 여성들 그리고 그들의 관계를 통해 흔한 남성 제작자라는 혐의에서는 얼마간 비껴가 있다. 극 초반 톱스타 정희란(이하늬)와 신인 신주애(방효린)의 갈등은 그저 남성들이 갖는 흔한 판타지 중 하나인 더 어리고 신선한 후배애게 질투하는 나이 든 여성 즉 여적여 프레임으로 보이지만, 후반에서 그들은 유치한 남자들 상상 속 여적여가 아닌 권력의 노리개에서 스스로 벗어나고자 연대하는 동시에 정당하게 실력을 두고 경쟁하는 동료가 된다. 또한 극중에서 제작자의 주문대로 단순히 남성을 위한 야한 영화 제작이 아닌 자신의 예술적 철학을 담으려 몸부림치다가 제작자와 갈등을 빚고 사슬 시퍼런 군사정권의 검열에에도 시달리는 샌님 스타일의 남성 감독은 얼마간 그 자신을 투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 속 감독은 급기야 정희란의 ‘강제로 당하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는 없다’는 일침을 받아들여 여자 주인공 둘이 손잡고 애마를 강제로 범하려 했던 찌질한 남자를 벌하는 엔딩으로 영화를 바꾸지만, 제작자의 분노로 롤백되어 결국은 우리가 아는 야한 영화 애마부인으로 개봉하고 만다. 당시에는 일종의 금기에 가까웠던 여성의 성욕을 객체가 아닌 주체로 설정한 것 자체만으로도 파격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40여년의 시간이 흘러
<애마>는 그렇게 주체적이든 뭐든 ‘여성의 성’을 논하는 것 자체가 결국 남성들의 욕망을 위한 성적 대상화로 남을 수밖에 없는 씁쓸함을 되새기게 한다.
또한 예나 지금이나 연예계와 뗄레야 뗄 수 없는 돈과 권력과의 유착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오늘 본 것을 발설하거나 혼자서라도 읊조리면 죽는다는 각서까지 쓰게 만들었던 권력. 여성의 성을 다루는 인식은 수십 년이 지나 이토록 발전했지만 군사정권 시대를 지난 지 오래임에도 여전히 주어만 바뀔 뿐이다. 한참 전 고인이 된 배우가 유서로 남긴 리스트부터 최근 디스패치를 통해 폭로된 CJ 그룹 회장의 은밀한 취향과 파티까지, 이미 대중도 예전부터 알고는 있지만 돈과 권력이 있는 남성이 존재하는 한 상납과 유착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저렇게까지 해서 (성상납을 해서) 성공해야 해?’ 라는 경멸, 그래서 누가 누구랑 잤는데?라는 일차원적인 관음보다는 ‘대체 여자의 몸과 섹스가 뭐라고 저렇게까지 돈과 권력을 가진 남자들이 그깟 성욕과 권력을 등가교환할까’라는 의문으로 경멸의 손가락질 방향이 바뀌어야 할지도 모른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기 마련이므로.
여태까지 얼마나 많은 정희란과 신주애들이 침묵해야 했을까. 얼마나 많이 사라져갔을까. 바뀌지 않은 현실을 다소의 판타지로 창작물에서나마 해소할 수 있도록, <애마>의 마지막화는 희란과 주애가 서울 한복판에서 말을 타고 도망치는 등 아예 각오하고 시원하게 ‘뇌절’하면서 오히려 통쾌하다. 비장하거나 진지하지 않고 과감하게 픽션과 실제를 넘나들며 흘러가는 스토리 덕분에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2025년을 살고 있는 관객은 촌스러운 더빙 에로영화 제작기에서 그 시대에 대한 함의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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