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구여행자의 방앗간 소개하기

초등학교 앞에 있던 문구점에 매일매일 드나들며 백 원, 이백원 짜리 지우개와 연필을 구경하던 어린이는 자라서 훌륭한 문구여행자가 되었어요. 

파피어프로스트 (Papier Prost [Write on a papier, Prost to me])

문구브랜드 아날로그키퍼의 쇼룸이자 오프라인 샵이다.  
아날로그키퍼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고유한 방식과 형태, 가치를 갖는 아날로그의 가치를 문구로 재해석하며 온기가 머무는 기록의 도구를 연구하고, 만들고, 이야기하는 브랜드이다. 다양한 기록의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사용자만의 고유한 방식을 견고하게 쌓아나가기를 응원한다는 것이 브랜드의 컨셉이다. 그 동안 아날로그 키퍼의 제품은 주로 오브젝트 매장에서 오프라인 구매를 할 수 있었는데  2023년 서촌에 아날로그키퍼만의 공간 파피어프로스트가 문을 열었다. 

독일어로 종이(파피어), 건배(프로스트)를 뜻하는 이 이름은 기록하는 순간, 내 마음에 '짠'하고 울려퍼지는 경쾌한 감각을 의미한다. 문구를 만들고 판매하는 것을 넘어서 기록을 사랑하는 방문자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궁금해하고 궁금증을 주고받으며 기록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냈다. 

출입문의 손잡이에는 안팎으로 은색의 고블렛이 달려있다. 마치 이 문을 여는 것 부터 마음의 '짠'을 일으키는 것 같다. 밝고 편안한 화이트와 우드계열의 가구들의 배치가 일률적이지 않고 제 나름의 리듬감을 갖추고 있다. 상품 진열이 아닌 누군가의 기록 전시물을 탐방하는 기분으로 공간을 둘러볼 수 있다. 

아날로그 키퍼의 제품은 익숙하지만 낯선 느낌을 주는 디자인과 사용방법을 제안하여 때로는 사용자가 이 제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선뜻 떠올리기 어려울 수 있다. 그 때문인지 제품 하나하나마다 제작자의 손글씨로 직접 기록하고 사용한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제품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단순한 사용 설명서가 아니라 다양하게 제품을 사용하고 기록함으로써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들에게도 기록에 대한 의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만큼 진심이 느껴지게 한다. 그야말로 다른 사람의 일기장을 하나하나 톺아 보는 기분이 들어 나도 이 사람 처럼 때로는 소소하게 때로는 멋지게 빈 노트를 채워보고 싶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노트, 다이어리, 스티커, 메모패드, 클립, 자석 등 각각의 아이템이 만들어낸 풍경은 그 어느 하나 전체의 균형감이나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며 조화를 이룬다. 펜을 진열해 놓은 공간도 마찬가지 이다. 한 브랜드의 흰색부터 검은색까지 모든 색을 일률적으로 갖추는 것이 아니라, 파피어프로스트에 들를 사람들이 선호할 만한 색상을 큐레이션 하여 배치해 놓은 것이 아주 인상적이다. 색연필, 중성펜, 볼펜, 형광펜, 샤프 등 다양한 상품을 갖추면서도 눈에 거슬리는 것 없이 흐름을 따라 쭉 구경하게 만드는 숨겨진 센스를 흠뻑 체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시필공간은 파피어 프로스트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제품에 사용된 종이로 만들어진 메모지에 도장을 찍고 펜으로 메모해 볼 수 있도록 마련된 널찍한 공간은 그 동안의 모든 구경과 구매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설렜던 기분과 흥분된 감정을 추스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날로그키퍼의 디자이너이자 대표인 문경연님이 쓰신 나의 문구여행기라는 책을 읽고 ㅇㅇ을 좋아한다, 즐긴다, 향유한다 라고 하면 이런 방법으로도 가능하구나 알게 되었는데, 파피어프로스트를 방문하는 것은 마치 이런 문구 여행의 샘플을 맛본 기분이다.

문구와 기록을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을 공간의 구석구석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나가는 문을 열게 될 것이다. 



스물트론스텔레 (Smultronstalle)

파피어프로스트를 방문한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읽어보는 것을 좋아한다. 여느 날 처럼 네이버 블로그를 검색하는데 새로운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입에서 굴려보는 발음마저 낯선 일곱 글자 바로 스물트론스텔레이다. 
무려 지난 2월에 문을 연 따끈따끈한 신상 공간이다. 여러 글을 검색해 보니 문구 브랜드 썸무드 디자인의 쇼룸이자 오프라인 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겨운 벽돌 건물 한 켠에 빼꼼 나와있는 나뭇잎 무늬와 그 아래로 육중하게 놓여진 철문이 그 너머에 있는 공간을 더욱 신비롭게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스웨덴어로 야생 딸기밭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평온과 안식을 주는 소중한 장소, '나만 아는 행복한 아지트'를 의미한다고 한다. 썸무드 디자인이라는 브랜드는 작년 말 경 부터 2026년 다이어리를 찾아보면서 알게 된 브랜드인데 마침 이렇게 파피어프로스트와 가까운 곳에 쇼룸을 오픈 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신기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입장했다. 

파피어프로스트가 벽 한면을 전부 통창으로 만들어 밝은 빛이 포근하게 들어오도록 만든 하얀 세상이라면, 스물트론스텔레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한 톤 다운되어 있는 간접 조명이 은은하게 퍼지는 세상이었다. 역시 큰 창문이 배치되어 있지만 그 앞은 다이어리를 진열해 놓은 진열대로 부분 부분 가려져 있어 사이사이로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배치한 점이 인상 깊었다. 


썸무드 디자인은 남녀노소 누가 사용해도 튀지 않고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놔도 주변 사물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디자인을 지향하고 있다. 문구를 두고 누군가는 ‘예쁜쓰레기’ 라고 하기도 하는데, 예쁜 쓰레기로 남지 않을 실용적인 제품을 만들고자 했다. 요약하자면 ‘담백한 디자인’과 ‘실용적인 구성’이 썸무드 디자인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운 수납장에 각종 종이들이 놓여있는 것을 보니 해리포터의 올리밴더 지팡이 가게가 생각났다. 그 앞에 서면 내게 어울리는 또 나의 선호도를 만족 시킬 수 있는 종이가 저절로 날아오지는 않지만 직원 분이 직접 종이를 고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종이를 골라 그 자리에서 바로 노트도 만들어 가질 수 있다. 

건너편 공간에는 공간을 묵직하게 채운 알루미늄 책상이 놓여져 있는데 한 편은 문구 애호가라면 한 번 쯤 들어봤을 만한 다양한 문구 용품들이 놓여져 있었다. 소개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반대편이다.  
4-5층짜리 낮은 투명 서랍에 칸칸이 펜이 들어있는데 그 모습을 소개한 문구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그저 판매하기 위해 상품을 진열만 해 놓은 것이 아니라, 판매자의 큐레이션을 통해 의도를 파악하고 그 의미에 공감하는 구매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브랜드와 공간, 상품에 대한 만족도를 최대로 끌어 올리는 기회가 되었다. 다양한 문구 작가들과 협업하여 작가들이 직접 사용했던 혹은 추천하는 상품들을 소개하는 것 또한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두 곳의 방문을 통해 느낀 것은, 물건을 사고파는 지극히 건조하고, 계산적인 행위는 그 전후 모든 과정에 담긴 판매자와 구매자의 서로에 대한 공감, 궁금증, 여러가지 제안과 의도를 느끼게 될 때 단순한 재화의 이동이 아닌 새로운 경험과 세계의 공유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랑하고 즐기는 진심 어린 마음을 나누는 경험을 기대하며, 오늘도 새로운 세계로의 문을 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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