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the new world
최근 새롭게 사귄 지인이 있는데, 요즘 '원래 자신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것'들을 해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성인이 된 이후로 운동화를 신어본 적이 없는데 나이키에 빠졌고, 옷장에 무채색 옷만 죄 걸려있는데 알록달록한 옷을 하나씩 사본다고. 우리가 그래서 친해질 수 있었구나 싶었다. 나 역시 그러려고 노력중이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안정된다는 건 가능성이 하나씩 차단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만치 살아왔으니 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아는 기분이 들고 그것은 꽤 괜찮다. 뭘 하면 기분이 고양되는지, 뭘 보면 슬퍼지는지, 뭘 먹어야 만족스러운지, 어떤 생각이 날 좀먹는지 같은 것들을 알고 있기에 스스로를 적당히 컨트롤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재미가 없어서 어마어마했던 가능성의 나무들이 가진 뿌리나 가지들을 모두 쳐내고 작은 분재 하나 남은 쓸쓸한 기분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중년의 우울(...)을 타파하기 위해 새롭게 시도해본 것들에 대한 이야기.
<위스키바>
술을 잘 마시지 못하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안 했는데, 서론에서 언급한 지인이 요즘 자주 간다고 해서 호기심이 생겨 따라갔다. 한남동 골목에 위치한 작은 곳인데, 사람들이 제법 많아서 꽤 오래 기다려야 했다. 모든 직원이 멀쑥한 양복을 차려입고 안내해주는데 그 의도된 연출이 나에게는 살짝 민망하기도 했지만, 체계와 절차가 새롭고 신기했다. 커버차지라고 입장료나 자릿세 같은 개념의 돈을 내야 하고, 물이나 과자나 초콜릿같은 간식 한 두개가 나온다.
'늘 시키던 것으로' 같은 주문을 하면 간지나겠지만, 난 누가봐도 처음인 사람처럼 주변을 신기하게 두리번 거리고 있었고, 심지어 술도 못하므로 얌전하게 추천을 받았다. 술 맛이 많이 나지 않는 달달한 칵테일을 추천해주셨는데, 아이스크림과 콜라, 약간의 술이 섞여 있어서 정말 맛있었다. 함께 간 지인이 맛보곤 이건 술이 아니라고 할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은 기존에 마셨는데 좋았던 것이나 선호하는 향이나 스타일 같은 것들을 말하고 그에 기반해 여러 개를 추천 제안하면 그 중에 하나를 골라 주문하고 잔 단위로 마시고 있었다. 위스키 종류나 특성에 따라 잔도 달리해서 마신다고 한다. 향만 맡아보았는데 소주같은 알콜과는 다른데, 또 말그대로 정말 진한 술 향이 났다. 은은하게 바닐라향, 스모키향 같은 것들이 느껴지기도 했다.
낮은 조도에 다들 도란도란 떠드는 분위기여서, 적당히 한두잔 하고 간식 주워먹으며 분위기를 즐기기엔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계산하고 나오는 길에 다신 못 오겠다 싶기도 했지만...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이 처음은 아니지만 모든 전시는 처음 본 것이니까. 근래 국현미에 두 번 가서, 각각 '소멸의 시학 - 삭는 미술에 대하여'와 '데이미언 허스트 :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 를 보았다.
소멸의 시학은 큰 기대 없이 산책하듯 가서 봤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관람 마감시간 직전에 들어가서 시간이 별로 없어서 하나 하나 꼼꼼히 보진 못했는데 그럼에도 전체적인 플로우(?)가 좋았다. 서로 다른 작품들이 얽혀있는 동선 활용까지 흥미롭게 느껴졌다. 어느 순간부터 영화보다 전시를 선호하게 되었는데, 나만의 리듬대로 읽을 수 있어서인 것 같다. 급하면 급한대로, 여유가 필요하면 그렇게.
시작부터 흙바닥을 밟고, 누군가가 삽질(?)을 하는 것을 보면 이것이 '현대미술'이구나 싶다. 그 외에도 모든 작품들이 굉장히 가깝게 느껴져서 그 안에 들어간 듯한, 체험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회적이든 철학적이든 메시지를 읽어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면 현대미술은 제법 즐거운 오락이다.
데미언 허스트는 이 시점에 새로움에 대한 메타적 인식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파격적이어서 새롭고, 젊기에 주목 받았던 날들이 쌓여 이제는 올드하거나 진부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가 제시한 이미지는 스스로도, 혹은 영향력을 가지면서 확장되어서도 너무나 많이 반복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십수년 전, 이게 제일 비싼 작품이래 하며 낯선 미술관을 방문하게했던 그가 가진 오리지널리티의 임팩트를 잊을 수 없기에 열심히 예매전쟁에 참전했다.
전시의 콘텐츠가 가진 충격보다 사람이 너무 많은 충격이 더 큰 것 같긴 하지만, 보러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미술과 예술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같은 거대한 담론은 논할 수 없다. 나는 그저 스스로에게 되물을 수 있다. 무엇을 보고 싶어하는가, 어떤 것을 기대하는가. 그것이 만족되지 않았더라도 그 사실을 알게되었다는 것으로 나에게는 또 하나의 지표가 생기는 셈이다.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흥미롭긴 한데 타인에게 강권할 수는 없고 이미 흥미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적당히 추천할 수 있을 정도. 다만, 현대미술의 근본적 의문이 될 수도 있는, 그래서 상어를 직접 잡지도 않았고 소를 직접 도축한 것도 아닌데 그 예술가가 주장하는 아이디어가 얼마나 설득력을 가지느냐의 문제는 여전히 찜찜하게 남아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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