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23의 게시물 표시

내일은 더 나을 것이라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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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고대했다. 아기가 약 두달째 앓던 독감과 기관지염을 막 회복했고 어린이집에서도 여전히 점심만 먹고 오는 정도이긴 하지만 울지 않고 잘 놀고, 잘 먹고 온다고 했다. 마침 엄마도 연말에 휴가라고 하기에 금요일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면 바로 친정으로 향해야지, 당장 지난주였던 크리스마스 연휴 때에도 친정에서 엄청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이 있어서 행복한 연말을 보낼 수 있겠거니 했었다. 과거형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결국 그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아기가 노로바이러스 장염에 걸린 탓이었다. 밤새 토를 수차례 하고 더이상 나올 것이 없어 물만 토할 때에도 그저 급체일 거라 믿었는데 노로바이러스 장염이라면서 증세가 지속되면 입원해서 수액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인터넷에 노로바이러스라고 검색하면 수없이 나오는 후기가 있는데도 이상하게 나한테만 불운이 찾아온 것 같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남편과 나도 노로바이러스 장염에 걸려 고대했던 연말을 배를 움켜쥐며 화장실에만 들락날락하고 있다. 어디가 불편한지 말도 못하고 그저 울고 짜증만 내는 아기를 보면 이도저도 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나는 또 안다. 이 시간은 지나가리라는 것을. 늘 그랬다. 하루가 너무 지옥같고 힘들었던 날의 다음 날은 살아가라고 힘을 주려는 듯 조금은 할 만 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지금은 울고 짜증내지만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방긋 웃고 애교도 부리고 기운차게 돌아다닐 것을 나는 안다.  인생에 들고 남이 있다는 것,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것을 떠올리면 자연히 인생이 참 시시하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어차피 당장 죽을 것도 아니고(ㅎㅎ) 살아야 한다면 오늘 힘들었다면 내일은 괜찮을 거라는, 내일은 더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지내보려 한다. 이 별 것 아닌 자기 위로가 새해를 맞이하는 결심이라면 결심이겠다.  덧붙여 얼마전 무임승차 친구들과 이런 시시하게 느껴지는 인생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명쾌한 해답을 내리지는 못하더라도 살면서 느끼는 여러 생각과 ...

상실과 비워내기, 대신 그만큼 담고 채우기

     상실과 비워내기 , 대신 그만큼 담기 . 나의 2023 년을 이렇게 정리하며 올해 마지막 무임승차 뉴스레터에 한 발을 얹는다.   우선은 2022 년까지 포함해서 나에게 있어 중요한 사람들의 상실을 줄줄이 겪었다 . 어쩌면 내 나잇대를 생각하면 조금 늦은 편인지도 모른다 . 정말 가까운 사람들의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경험 . 여태까지는 TV 등을 통해 나만 일방적으로 알거나 혹은 친척이라고 해도 굉장히 먼 친척이어서 크게 실감이 나지 않았던 것 같다 . 항상 당연하게 그 자리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분들이 이제 없다 . 바쁜 일이 끝나면 전화를 해야지 , 근처 동네에 놀러갈 일이 생기면 잠깐 얼굴 보고 빵이라도 사드리고 와야지 , 이런 지켜지지 않은 내 안의 약속들이 허망하고 죄송스럽다 . 나중에 내가 그분들을 만나는 날이 온다면 그래도 나를 구박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다 .   삶과 죽음에 대해서 예전보다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 죽으면 어디로 갈까 ? 와 같은 추상적인 의문조차 좀더 무섭게 다가오는 기분이다 . 자기 손으로 시작을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우연히 나라는 인간으로서의 인생에 내던져졌으니 , 적어도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라도 내가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길 바란다 . 먼 훗날 내가 떠나는 날이 오면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모여서 피자나 연어 , 닭칼국수 같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에다가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시원한 맥주나 마시면서 나에 대해 재밌고 서운했고 미안했고 고마웠던 이야기나 나누어 주면 고맙겠다.    삶과 죽음 같은 추상적 고민을 하다 보면 결국 지금 살고 있는 현실에 충실하자는 정해진 답에 도달하는데 , 죽기 전에 내 한 몸 뉘일 나만의 공간을 위해 집 매매와 독립 등의 아이디어에 좀 더 현실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 국가에서 인정해 주는 청년의 나이 범위에서 벗어난 첫 해 , 이런저런 계획을 머릿속으로 하는 것 만으로도 괜히 더 어른이 된 듯한 기분에 젖...

올해도 무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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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한 해가 지나 결산글을 작성하고 있자니 서운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작년 보다는 좀 더 다양한 소재로 나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했고, 어느 정도 반영이 된 것 같아 만족스럽다. 무임승차 하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기대며 이렇게 저렇게 한 해를 이끌어 온 팀원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작년보다는 조금 더 다양한 주제로 베스트를 뽑을 수 있도록 노력했으니 모쪼록 재미있게 읽어 주시기를!  올해의 잘한 일_정리 수납함으로 정리하기 아이돌, 어벤져스, 스티커, 마스킹테이프, 산리오, 해리포터 등 이것저것 다양한 덕질의 결과물들에게 나의 소중한 공간을 내어 준지 몇 년이 지났다. 한 번에 조금씩 정리를 하긴 하지만 올해는 구역을 나누어 대대적인 정리에 들어갔다. 책상 밑 수납 공간, 옷장 옆 수납 서랍, 신발장, 수납장 등 각각의 구역을 나누고 매주 한 곳 씩 수납함을 구매하여 들어갈 만큼만 채우고 나머지는 버릴 건 버리고 나눌 건 나누는 활동을 이어갔다. 정리 관련된 책도 여러 권 빌려보기도 했다. 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이기에 나에게 부담을 주거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과감히 공간에서 제거하고 나에게 편안함을 늘려가자는 마음으로 정리에 임했던 것 같다.  올해의 새로운 시도_당근마켓 올해의 잘한일과 이어지는 글이다. 정리를 통해 자리를 내줘야 하는 많은 물건들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당근마켓은 필수였다. 본격적으로 당근마켓에 가입하고 스티커와 마스킹테이프들을 하나하나 올리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은 문의가 들어왔고 꽤 팔리기도 했다. 머그컵, 알람시계, 바디워시 등은 무료나눔을 하기도 했다. 약속을 해놓고 갑자기 잠수타는 고객님들이 나를 좀 빡치게도 했지만 무료나눔에 고맙다며 젤리를 가져온 고객님들에게서 감사함을 느끼기도 했다. 배달음식과 함께받은 콜라를 10병이나 모아서 판매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그 동안 너무 좋은 쉴 곳이 되어 주었지만 점점 처치곤란이 되었던 소파를 팔았던 일이다. 10건 넘는 문의가 들어왔...

올해의 OO

  2023년 결산을 위해 2022년 결산과 2023년 다짐을 다시 둘러보고 왔다. 그때의 뼈대를 가져오고 내용을 피드백하는 형태로 2023년 결산을 보고해본다. 올해의 영화 전년과 비슷하게 한 달에 한 번꼴로 영화를 봤다. 기대했던 대로 오펜하이머와 미션임파서블 데드레코닝을 챙겨보았다. 두어시간만큼은 극장에서 온전하게 몰입할 수 있었지만, 둘 모두 올해의 영화로 꼽기는 좀 아쉽다. 내가 무슨 3대 영화제 심사위원도 아니니 작품성의 차원에서는 아니고, 엔터테인먼트 쾌감의 기준에서 그랬다. 마블 시리즈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지만, 가오갤3는 그야말로 '흡족한' 피날레였다. 어쩌다보니 2023년 유이한 천만영화 범죄도시3와 서울의봄을 보았는데, 사전에 큰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도리어 만족스러웠다. infp이자 영화광인 배우 이준혁을 응원합니다. 베스트라고 꼽지는 못하겠지만, 유령은 그야말로 아드레날린이 뿜뿜했다. 개봉 당시 어영부영 하다가 놓치고 최근에 OTT를 통해 겨우 봤는데, 솔직히 초반에는 산만하고 겉도는 느낌이었는데, 박소담의 '바로 그 순간'부터 말 그대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전체적인 매무새가 세련되거나 매끄럽지는 않지만, 오히려 거칠기 때문에 느껴지는 날것의 매력이 있다. 그래서 올해의 영화가 뭐냐고? 그건 역시... 슬램덩크 아닐까...? 올해의 책 책은 키워드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극과 극의 소설, 두 번째는 새로운 세계로 눈을 뜨게 해 준 인문사회 분야, 마지막으로 오디오북이다. 전년에 이어 추리소설이 아닌 서사를 피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만난 것이 초급한국어, 취미는 사생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였다. 잔잔해보이지만 이상하게 페이지 넘기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책들이었다. 그와 다르게 페이지 터너라 할 수 있는 한국의 추리소설 작가 정해연을 만난 것도 올해의 행운이었다. 불편함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다음 소설을 기다리게 만드는 훌륭한 스토리텔러다. 언러...

스웨덴, 가족, 좋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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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을 돌아보며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만, 가장 최근의 일들이 가장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 12월을 불태웠던 주제, '스웨덴'이 올해 나의 무임승차 뉴스레터의 주제이다. 사진출처: 스웨덴 홈페이지 https://sweden.se/ 박사과정 4학기를 마무리하며 드디어 수료 상태가 되었다. 4학기 수업의 하이라이트는 복지국가와 사회정책에 관한 것이었다. 수업 초반부터 나에게 깊이 다가온 국가가 있었는데 바로 스웨덴이었다. 늘 복지국가 하면 북유럽 국가들을 떠올리게 되는데 막상 그들이 어떠한 역사와 정치, 문화적 맥락에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수업이 스웨덴에 초점을 맞춘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나는 계속 스웨덴에 꽂히게 되었다. 그래서 무리수를 두게 되었는데, 스웨덴의 장례 복지 정책을 분석해보겠노라고 목표를 잡았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이었는데 목표를 정하고 보니 참으로 무모했구나 싶었다. 가본 적도 없는 그 나라의 장례를 알아보려니 '언어'에서부터 턱 막혔다. 그래도 챗GPT와 Deepl의 훌륭한 언어 비서가 있었기에 도전해볼만했다. 그렇게 스웨덴이라는 나라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먼저 스웨덴이라는 나라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책들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주변 국가들에 관한 책들도 살펴보았다. <리얼 스칸디나비아: 북유럽 사람이 쓴 진짜 북유럽 이야기> <도서관과 작업장: 스웨덴, 영국의 사회민주주의와 제3의 길> <네덜란드에 묻다, 행복의 조건: 네덜란드는 왜?> <핀란드가 천국을 만드는 법: 어느 저널리스트의 '핀란드 10년 관찰기'> <핀란드 경쟁력 100> <상상 속의 덴마크: 오해와 과장으로 뒤섞인 '행복 사회'의 진짜 모습> <스웨덴 일기: 1등을 우대하지 않고 꼴찌를 차별하지 않는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의 빛과 그림자> <우리는 미래에 조금...

다른 사람 품에 안기는 널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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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고 다소 구질구질한 90년대 가요 가사 같은 제목을 붙여 보았지만 사실은 아기 어린이집 보내는 이야기. 우래기(ㅎㅎ)는 백일 무렵부터 낯가림이 왔다. 그 말인 즉 백일 이후 부터는 다른 사람 품에 가기만 하면 울며 불며 나를 찾아 하루하루가 엄청 고역이었다는 것. 지나고 나면 이 때가 그립다지만 나로서는 기약없이 아기와 매일 씨름을 하는 기분이었다. 심할 때는 아빠에게도 가지 않아 과연 나중에 어린이집을 보낼 수 있을까 막연히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곤 했는데 어느새 그 날이 온 것이다, 어린이집에 보내는 그 날이. 어린이집에 보내기만 하면 아기를 맡기고 한숨 돌릴 수 있을 거란(그토록 원하던 나 혼자만의 시간!!!) 기대와는 달리 대부분의 어린이집에는 적응기간이라는 게 있다. 보통 첫주에는 보호자와 함께 한시간씩 보내다가 조금씩 혼자 머무는 시간을 늘려 밥도 먹고 낮잠도 자고 하는 식이다. 적응기간은 아기들마다 다르겠지만 빠른 아기들은 일주일, 이주일 정도면 된다는데 역시나 우래기는 어린이집을 보낸 지 꼭 한달이 되었으나 아직도 오전 딱 한 시간 만을 보내다가 온다. 그마저도 얼마 전까지는 어린이집만 가면 내가 어디갈까봐 내 옷자락을 꼭 부여잡고 품에 안겨 울기만 했었다. 그러다 나와 떨어져 어린이집에서 시간을 보낸 지 어언 일주일째, 이제는 선생님 품에도 잘 안겨있는 우래기를 보니 그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게다가 며칠 전부터는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나를 보고 ‘바이바이’ 하는 의미로 손을 흔드는데 그 짧은 시간 안에 또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예전에는 나와 친정엄마 품에만 안겨 있으려 했는데 요새는 내가 있어도 남편에게 가서 안아달라고 하고 시어머니 품에도 잘 안겨 있던 것이 떠올랐다. 언제나 내 품에서 떨어져 나갈까 궁리만 했었는데 그런 날이 오기는 하는 것이었다. 이쯤되면 어느새 훌쩍 자라 다른 사람 품에 안기는 아길 보며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으나 아직 그정도로 아쉽지는 않고(ㅎㅎㅎ) 부디 앞으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