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24의 게시물 표시

무너지지 않을 유토피아를 꿈꾸다

   매년 반복되는 일상과 인생이지만 1월은 왠지 모르게 특별하게 느껴지는 달이다. 로마력의 새해가 시작되는 첫 달, 나에게는 내 생일이 있지만 초중고대 시절에는 늘 방학이다 보니 제대로 생일파티라거나 누군가의 서프라이즈 같은 건 단 한 번도 없었던 달(물론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그런 건 없지만), 그리고 지금 하는 직무를 시작하고 나서는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 그렇지만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첫 번째 달이라는 상징성만큼은 이 세상 누구에게나 예외 없다. 그러니 이 뜻깊은 2024년 첫 뉴스레터에 무슨 글을 쓰면 좋을까, 혹은 나는 무슨 글을 쓰고 싶은 것일까 꽤나 고민했는데, 1년, 5년, 10년 전의 나에게 없다가 혹은 몰랐다가 2024년인 지금 생긴 것에 대해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중에서도 단 하나만 뽑으라면 부동산, 자가(自家)에 대한 관심이 아닐까 싶다. 이젠 내 나이 또래들이 자가를 소유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잇대에 도달했으니 말이다. 또한 나 역시 현실적으로 검토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으니 이만큼 나 스스로 시간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은 또 없을 듯싶다. 때마침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감상했기에 더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맞물려 짧은 글을 남겨볼까 한다. 영화적인 재미나 메시지에 대한 리뷰보다는 아파트를 욕망하는 한국인 1로써의 감회가 더 진하게 섞였지만.  한국인들의 욕망과 심리를 아파트만큼 잘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또 있을까?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세상이 지진으로 무너진 상황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서울의 한 낡은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지극히 디스토피아적인 상황을 유토피아라고 묘사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재난영화, 디스토피아 영화의 볼거리보다는 극한 상황에 몰린 사람들의 생존 투쟁과 갈등을 통하여 아파트를 둘러싼 현대 한국인들의 욕망, 그리고 아이러니에 대한 해석에 좀 더 무게감이 있다....

따뜻한 봄이 오면 혹은 초여름!?이 오면

이미지
  내가 종사하는 업종 특성 상 12월~3월이 가장 바쁜 시기이다. 매일매일 야근에 주말에도 출근하고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일을 하다 보면 점점 낮이 길어지고 햇볕이 따스해지는걸 어느 순간 느끼는 것이다. 당분간은 이것저것 하고 싶다는 생각조차도 사치이기에 3월까지는 나죽었소 하고 열심히 일하고 4월부터는 허리도 좀 펴고 하늘도 보고 가끔 딴 생각도 할만큼 숨통이 트이기를 기대해 본다. 요즘은 봄이 너무 짧고 4월, 5월 무렵부터 온도가 올라가 초여름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따뜻한 날들이 많기에 봄이 오면 혹은 초여름이 오면 하고 싶은 것들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__ 일러스트나 디자인 관련 박람회를 꼭 가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나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는 시소 같은 관계로 인해 아직 한 번도 못 가봤다. 다이어리를 쓰면서 일러스트레이션이나 디자인에 더 관심이 많이 생겼고 세부적으로는 다이어리를 꾸밀 만한 여러가지 스티커나 마스킹테이프들을 구경하고 직접 구매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놓칠 수 없지! 매년 7월과 12월에 열리는 서일페에 올해 여름에는 꼭 한 번 참여해 보고 싶다.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__ 지난 가을 인터넷 화면 한 켠에 배너로 아주 특이하고 흥미로운 전시 포스터를 발견했다. 바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진행 중인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전시회 이다. 국현미 과천관을 가 본 것은 손에 꼽지만 갈 때마다 강렬한 전시의 추억을 선사해 준 항상 만족스러웠던 방문이었다. 추상미술의 특이성과 한국의 고유성이 만나 어떤 결과를 보여줄 지 기대된다.  2024 베르나르 뷔페__ 몇 년 전에도 한가람 미술관에서 뷔페 전이 열렸었는데 그 땐 가보지 못했다. 역시 뒷북의 달인..... 우연히 본 베르나르 뷔페의 그림은 조금 기괴하면서도 삐죽한 인간들의 공허한 눈빛이 기억에 남았다. 4월부터 전시 예정이라고 하니 이번에는 놓치지 않고 가보리라!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__ 올해는 꼭 음악...

갑진년을 맞아 값진 무언가를 기대하며

(나의 취향이 고루한 건지, 대부분이 비난하고 선호하지 않는 공무원 특유의 말장난식 카피를 좋아해서, 제목에 한 번 시도해보았다. 과감하지만 또 소심하기도 한.) 보통 많이들 알고있기로는, 어떤 목표를 세우고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외부에 공표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친구들끼리도 새해 목표를 공유하고 응원해주고 때로는 연말에 지켜보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얼마 전에 반대의 의견을 보았다. 목표를 '공표하는 순간'부터 이미 목표를 이룬 것처럼 생각해버리기 때문에 (시작이 반이니까) 도리어 의지가 해이해질 수도 있다는 것. 한편으로는, 타인의 반응이 나의 기대만큼 긍정적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나를 말리고 겁주고 힘을 빼놓을 때도 있기 때문에, 굳이 동네방네 소문내지 말고 무언가 하고자 마음 먹었다면 묵묵히 '그저 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입 밖으로 낸 목표를 이룬 적이 드문 나로서는 (반성합니다) 새로운 설명에 깨달음을 얻어 앞으로는 새해 목표를 공표하지 않으려고 한다. 새해 목표를 안 세워서 그런 게 절대 아니다. 다만, 새해에 기대하는 바를 나열해두고, 연말에 지난 기억들과 맞춰보는 것은 꽤나 재미있었어서 올해도 몇 가지 꼽아보려고 한다. 죽더라도 '이것' 다음에, 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책상 서랍 속 간식을 쟁여두듯 하나씩 늘려가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 [영화] 2월은 언제 올까요. 벌써부터 개봉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하는 장재현 감독의 '파묘'. 검은사제들과 사바하 등을 연출했던 장재현 감독의 신작인데, 예고편을 보고 굉장히 설렜다. 배우들 (특히 김고은!) 의 에너지, 생생한 불길함같은 것들이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몰입할 만한 무언가가 나오지 않았나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비범한 세계를 이해하지 못해 선뜻 좋아하지도 못하는 쪽이지만, '가여운 것들'은 궁금하다. 더페이버릿을 보며 엠마 스톤을 이렇게 써먹을 수도 있구나 ...

2024년의 첫걸음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질문은 거창하지만 이번에도 사실 아기 첫걸음마 이야기(…) 흔히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을 지금의 인간으로 만들어 준 것이 무엇인가. 다른 수많은 동물들에게선 나타나지 않은 복잡하고도 정교한 사회 시스템과 이토록 찬란한 문명(이토록 구태의연한 수식)의 시초, 인류가 수세기에 걸쳐 이 만큼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근원, 그것은 역시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양손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유롭게 양손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건 인간이 직립보행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두드러지게 차이가 나는 그 지점 바로 직립보행, 아기가 그 직립보행을 하기까지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그리고 18개월에 들어선 2024년 1월에야 드디어 아기가 두 다리로, 두 발로 스스로 걷게 되었다.  대개의 아기들이 대략 돌 무렵 걷는다고 하니 무려 6개월이 늦은 것이다. 아기의 성장에서 6개월이란 얼마나 긴 시간인지. 걸음마를 해야 하는 마지노선이라고 하는 시기에 다다를 때까지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르겠다. 불과 1년전 올해의 결심으로 ‘아기의 성장을 의심하지 말고 아기를 믿고 기다려 주자(1년 전 뉴스레터 참고)’고 했던 다짐이 무색하게 매일매일 포털사이트에 ‘아기 걸음마 언제까지’, ‘아기 대근육 늦으면’ 따위를 검색하며 아기의 성장에 대해 불안해했었다. 지혜로운 양육자가 되기란 쉽지 않다. 아기의 성장을 섣불리 의심하고 조바심을 내어서도 안되겠지만 각 시기별로 그때에 알맞은 발달과정이라는 것이 있는데 마냥 손놓고 기다리는 것 역시 양육자의 의무를 져버리는 느낌이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무척 버거웠다. 결국 균형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불안해하기 일쑤였지만. 어쩌면 ‘아기를 믿고 기다려주자’는 전언 같은 다짐은 너무 추상적이고 고차원적이라 지키기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하여 올해는 좀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침을 세웠다. 막상 글로 옮기자니 너무 시시하고 당연한 말이지만 적어보자면 ...

산, 비움, 다짐

이미지
 2024년 새해 첫 등산 코스는 관악산이었다. 새해 마음도 다잡고, 내 몸의 상태도 체크할겸 산에 올랐다. 산이라는 곳은 참 솔직한 장소인 것 같다. 산은 못난 모습과 거친 모습, 부드러운 모습, 편안한 모습 등등 자기 얼굴을 꾸밈없이 드러내 보이니까 말이다. 산이라는 장소는 세상의 리듬과 거리두기가 가능한 유일한 도심 속 휴식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서울 도심에 공원이 많지는 않지만, 그 대신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은 한국인들에게 큰 축복이 아닐까. 빡빡한 도시 생활에서 스위치를 끄고 도망가 쉴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산에 가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산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나를 객관화 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점점 위로 올라갈 수록 내가 발 딛고 살아왔던 것들은 아주 작은 점들처럼 작아지고, 그 안에서 아등바등하는 삶으로부터 나 자신을 측은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마치 신처럼. 내가 나를 그저 어여삐 바라본다. 산은 한편으로 나를 시험해보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나약해졌는지, 게으르게 살아왔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니까. 산은 늘 품어주는 엄마 같은 존재는 아니다. 거칠게 나를 대하기도 하고, 무심하게 대한다. 너는 너, 나는 나. 언제나 그렇듯 모든 산행은 처음이 힘들고, 내려올 때가 힘들다. 처음은 산에 나를 맞추느라 이전 것을 비우는데 힘이 많이 들고, 하산할 때는 정상에 올라오기까지 버텨낸 내 노력들을 내려놓느라 힘들다. 그래서 비움과 포기는 다른가 보다. 포기는 쉽지만, 비우는 것은 쉽지 않다. 산을 오르고 내리는 것은 끊임없는 비움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우고 오면, 다시 삶에서 채울 자리가 생긴다. 그리고 채움이 넘치면 비우기 위해 산을 오른다. 올해도 삶에서 넘어야 할 여러 고비들이 예고되어 있다. 인지하고 있는 고비도 있고, 내가 인지하지 못한 것들도 있을 것이다. 최소한 지금 내가 인지하고 있는 것에 한해서는 준비에 게으름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