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진지하게 책상 앞에 앉아 지난 3개월 치의 카드 이용내역을 엑셀로 뽑아 피벗을 걸고 나의 현재를 직시했다. 꼭 필요한 식비가 아닌, 그냥 기분 좋으려고 카페에 가고 빵을 사먹은 게 지출의 30%였다. 사실 좀 애매하다 싶은 건 제외했으니 실질적 비중은 그보다 높아질 거였다. 코로나로 인해 2020년부터 여행을 떠나지 못하게 되면서, 동네 여행이라는 핑계로 온갖 카페와 베이커리를 다니며 여행비만큼의 돈을 썼다. 이제는 루틴처럼 카카오맵 앱에 가고 싶은 곳과 다녀온 곳의 즐겨찾기를 늘려가는 것만이 취미이자 성취가 된 셈이다. 문제는, 그만치 돈 썼으면 됐지 싶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는 것이다. 원래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많아지고 알고 싶어지는 것도 많아지는 게 국룰. 게다가 '이 세계'는 정말 트렌드에 민감해서 쉴새없이 또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도달하는 일정 선 따위는 없으니 더더욱 그렇다. 이걸로 뭐 얻어지는 게 있냐 하면, 단언할 수 있다. 없다고. 일단 돈을 마구잡이로 쓴다. 게다가 식사 외에 플러스 알파로 먹는 것이고 디저트는 건강에 안 좋다. 블로그같은 거라도 해볼까 했지만 귀찮아서 시작조차 해본 적이 없다. 그럼 대체 왜? 냐고 한다면, 역시 '그냥', '기분 좋으려고'. 내 나름의 스스로를 보상하고 아껴주는 방식인 것이다. 아무래도 이 루틴을 완전히 포기하기는 어렵고, 지출의 30%보다는 줄여야 하니까, 먹킷리스트를 공언(?)하고 그 외는 자제하기로 다짐해본다. 무언가를 버리기 어려울 때 사진을 찍어두고 버리면 좀 낫다는 이야기랑 비슷한 맥락이라고 해야 할까. 여튼.


ㅇ 안서리베이킹랩

유투브를 보다가 알게 된 곳인데, 여기 정말 여러모로 말이 많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꼭 먹어보고 싶은 곳이다. 밀가루를 쓰지 않고 머랭으로만 만든 파블로바를 파는데 일단 가격이 사악하고, 눈딱감고 사보려 해도 구매 자체가 너무 어렵다. 한 달씩 예약을 받는데, 거의 주말에만 픽업이 가능하고, 판매 수량이 많지 않은데, 예약을 할 수 있는 건 기존 구매자 위주다. 아니 이게 무슨 경력 있는 신입같은 소리란 말이오. 처음 구매를 하려면 기존 구매자들 예약이 끝난 후 남은 수량의 예약을 성공해야 하는데, 블로그 댓글 마감이 진심 1초컷이다. 아이돌 콘서트 저리가라다. 덕분에 다섯달 이상 시도하고 있으나 택도 없이 실패 중이다. 애가 타는 중에 더 열나게 하는 인터넷 댓글이 있었으니, 연예인이나 각종 셀럽들 모임에서는 참 쉽게 나타난다는 것. 너무 샘나고 짜증나는데 더 화딱지 나는 건, 그럼에도 손절하지 못하고 일단 한 번 먹어보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 가오 죽어.


ㅇ 버터밀크

마포구에 위치한 브런치집. 처음엔 심드렁했다. 유명하다기에 궁금해서 즐겨찾기에 저장은 해두었지만 우선순위는 아니었다. 그러나! 책 팟캐스트에서 모 시인이 적극 추천하는 걸 듣고 솔깃해서 큰맘먹고 가봤는데 웨이팅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 후 우연히 평일에 근처에 갈 기회가 있어서 방문했는데 역시나 웨이팅이 거짓말같았다. 사람 마음이 어쩔 수 없는 게 그렇게까지 몰리면 괜히 더 솔깃하기도 하고 오기가 생기기도 한다. 왜 그리 유명한가 하고 후기들을 좀 찾아봤는데, 가격이 많이 비싸지 않기도 하고 팬케이크가 진짜 진짜 맛있다고 한다. 브런치집이라 영업시간도 짧은 편이라 가기가 정말 어렵다. 그래서 더 가고 싶은 곳.


ㅇ 커피브론즈

재작년 델리카한스 딸기케이크를 먹은 이후로, 딸기케이크에 대해서는 한풀이를 한 기분이다. 델리카한스 케이크가 최고여서라기보다 그때까지 웬만한 곳의 딸기케이크를 많이 먹어보기도 했고, 대체로 다들 예상되는 맛 (물론 맛있는) 이니 특별한 기대나 호기심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했다. 커피브론즈에 대해 알기 전까지. 어차피 대단히 색다른 맛일 것 같지는 않은데, 왜 이리 특별하게 느껴지는 걸까. 솔드아웃 이슈로 세 번쯤 실패했기 때문인 걸까. 오픈런하지 않고서야 먹을 수 없을 듯한 바로 그 케이크. 심지어 음료도 괜찮다고 하니 궁금해하지 않을 수가 없다.


ㅇ 문랜딩 & 카라멜리에 오

웨이팅이나 솔드아웃같은 이슈에만 목매는 사람은 아닙니다. 무지성으로 돈을 써제끼는 것 같아도, 단품 하나에 만팔천원이 되면 선뜻 지갑 열기가 망설여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문랜딩이나 카라멜리에 오의 파르페는 궁금하긴 한데 식사만큼 혹은 식사 이상의 돈을 태울 만큼의 가치가 있냐 하면 잘 모르겠어서 매번 근처까지 갔다가도 (두 곳 모두 용산구에 있다) 그 옆의 카페 두 군데쯤을 방문하고 만다. (에이드 두 잔을 마셔도 파르페 하나보다 저렴할 수 있다) 그럼 그냥 즐겨찾기에서도 지우면 되는데, 이상하게 계속 궁금하긴 해서, 언젠가 내가 여유가 생기면, 그게 언제일지는 알 수 없으나, 플렉스하러 가봐야지 하고 남겨두고 있다.


ㅇ 앨리스프로젝트

무려 '디저트 코스'를 표방하고 나선 곳 중 하나. 예전 롯데백화점 잠실점에 문화시민이란 곳도 디저트 오마카세를 내세워 인상깊었었는데, 찾아보니 이런 곳이 꽤 있더라. 이 역시 궁금하긴 하지만 나의 빈약한 지갑 사정상 과감하게 예약을 지르지 못하고 다음에... 이 다음에... 로 미루게 되더라. 이와 비슷한 이유로 티 코스나 애프터눈 티 세트를 파는 곳들도 방문하고 싶은 즐겨찾기 리스트에 오래오래 남아있다. 그것들이 언제쯤 방문했던 곳 즐겨찾기 리스트로 옮겨갈 수 있을까. 로또 당첨 그 날?


ㅇ 파브리케

솔드아웃도 웨이팅도 가격도 아닌 이유로 못 가는 곳. 영업일이 일주일에 단 두 번, 목, 금뿐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침 8시에 오픈해서 소진되면 끝인데 소진 속도가 너무 빠르다. 대단히 유명한 것 같지도 않은데, 아는 사람만 사더라도 이미 끝이다. 연차를 써서 오픈런을 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으니 매번 애가 닳는다. 그런데 요즘 베이커리 중에 이런 곳이 정말 많다. 일주일에 삼일 이하로 영업하는 곳. 처음에 언급했던 안서리도 그런 식이다. 예전에는 그게 나머지 날에 쉬거나 준비하는 정도의 배부른 장사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다른 날 '클래스'를 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심지어 직접 판매하는 가게는 접고 클래스만 하는 경우도 종종 봤다. 그야말로 생선을 잡아서 파는 것이 아니라, 생선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게 더 돈이 되기 때문이겠지. 디저트도 독서도 부동산도 그 자체보다 기술이나 노하우 같은 것이 더 큰 시장이 되는 세상이라니 메타적이고 새삼스럽다. 여하간 이 곳도 클래스만 하게 되기 전에 먹어봐야 할텐데... 눈물이 나네.


ㅇ 드소영 & 락희

나에게 왕십리는 곱창골목 정도의 이미지였다. 교통이 편리해 친구들과 약속 장소를 잡아도 마땅히 좋은 곳을 찾지 못했던 경험이 꽤 되는데, 무려 강남이나 홍대쪽에 있을 법한 고급진 디저트 가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 방문난이도가 극악인 수준의 영업일은 아닌터라, 언젠가는 가볼 수 있을 거란 마음으로 인스타를 지켜보고 있는 곳 중 하나다. 정 안 되면 온라인 주문도 있기는 하다. 후기들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정통파 파티세리 느낌이라 기대감이 한없이 올라가고 있다. 비슷한 이유로 혹은 정반대의 이유로 가보고 싶은 락희는 효창공원 근처의 베이커리다. 카카오맵 상세정보에 '꼭 찾아와 먹을 유명한 빵집은 아니지만 열심히 만들어 두겠습니다' 라고 적혀있는데, 아니오, 꼭 찾아가 먹을 빵집이라고 생각합니다. 먹어본 적은 없지만, 메뉴부터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위스키크림크로와상이라든가 죽향딸기타르트 같은 이름들을 듣다 보면, 궁금해 참을 수가 없을 지경이라고.


ㅇ 내자상회

내자상회는 이미 너무나 유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웨이팅이 엄청난 곳은 아니다. 사실 가고자 했던 것도 서너번 되고, 갈 수 있었던 것도 그만큼은 된다. 그러나 망설이고 고민만 하다 결국 돌아섰던 이유는 혼자 가기가 좀 그래서였다. 혼밥 혼영 혼여 정말 혼자서도 거리낌없이 잘 다니는 나지만, 이런 경우 저어된다. 여러 메뉴가 궁금한데 내 배와 지갑은 한정되어 있을 때, 가게에서 안 받아줄 것 같을 때. 내자상회는 전자에 해당된다. 쑥절미 카스텔라도 먹어보고 싶고 인절미 카스텔라도 먹어보고 싶은데!! 쑥라떼도 단풍라떼도 먹어보고 싶은데!! 메뉴만 결정된다면 언젠가 먹으러 갈 수 있겠지. 후자인 가게에서 안 받아줄 것 같아서 못 가는 경우는 부베트. 부베트의 초코무스가 너무나 먹어보고 싶은데 혼자 가도 받아주는지, 초코무스만 시켜도 되는지를 몰라서 못 가고 있다. 네이버 블로그 검색을 엄청나게 해봤는데, 나같은 사람이 없는 것 같더라고. 전자 후자 모두 해당되는 건 오리지널팬케이크하우스다. 언젠가 한 번 동네 친구에게 제안해보았는데, 단칼에 거절당했고 우린 결국 스타벅스에 갔다.


...쓰다보니 정말 끝도 없이 줄줄이 이어질 것 같다. 울프소셜클럽의 키라임파이나 기쁜소식의 산도(정말 쓰고 싶지 않은 단어지만)와 루이보스밀크티, 상향선의 런던포그, 빌라앰버시의 서울라떼, 도래노트의 티크림푸딩, 단고당의 고양이 화과자, 루즈도어의 넛맥도넛, 서계동커피집의 아이스크림샌드, 발루토피비의 딸기와플, 차차티클럽의 곶감 살라미 등등... 심지어 모두 다 서울에 한정된 거다. 다른 지역도 더하자면 오백개는 족히 넘을텐데 이거 무슨 먹어본 것도 아니고 먹고싶은 것을 자랑하다니 우습기 그지 없지 않은가. 그만 해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또 가게들이 떠오르니 정말 답이 없다. 그 와중에 또 신세계 강남점에서는 새롭게 스위트파크를 오픈했다고 하는데 라인업이 어마어마하다. 하, 과연 2024년의 나는 자제할 수 있을까? 첫 문단의 약속을 마지막 문단에서 지키지 못하겠다고 하다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지고 달콤함에 약한 인간이여.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나 남이 연애하는 거 좋아하네

소녀의 로망

곁다리 라이프의 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