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요 춘천에
이 글은 10월 1일과 3일 퐁당퐁당 공휴일에 춘천에 갇혀있을 거라는 내 한탄에 선뜻 먼 걸음 해주겠다는 친구를 위해 시작하였으나, 친구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덕분에(!) 본래의 쓸모는 잃어버렸다. 그치만 언젠가는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겠지.
1. 일단 출발
춘천은 서울과 가깝고도 먼 도시다. 만약 당신이 서울의 동쪽을 출발지점으로 삼는다면, 당일치기 여행으로 강추한다. 강변역의 동서울터미널 또는 잠실역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넉넉히 1시간 반이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심지어 차도 15~30분 단위로 자주 있다. 얼마 전 8호선이 연장됨에 따라, 배차간격만 잘 맞춰 움직인다면 무려 지하철을 타고 갈 수도 있다. 별내역에서 경춘선으로 1시간 15분 정도 소요된다. 그러나 역시 '여행'의 기분을 내고자 한다면 기차를 선호할 것이다. 춘천가는 열차라는 노래도 있지 않은가. ITX는 시간표와 정차역을 잘 살펴봐야 하지만, 용산역에서 타면 1시간 20분 정도 걸려 춘천역에 도착한다. 지하철이나 ITX를 탈 경우, 남춘천역과 춘천역 중 어디로 하차해야 할지 선택해야 한다. 남춘천역은 버스터미널까지 10분 정도 걸릴 정도로 가깝고, 춘천역은 종점이며 강과 가깝다. 방문하고자 하는 곳에 따라 결정하면 된다.
2. 춘천이 처음이라면
'나 춘천 다녀왔어'라고 할 때 예상 가능한 상대의 반응을 선제적으로 고려한 코스다. 그래도 춘천 왔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먼저 닭갈비를 먹으러 가야 한다. 닭갈비집이 모여있는 곳은 크게 세 군데 정도 꼽을 수 있는데, 우선 추천하는 곳은 신북읍의 소양강 근처다. 교외에 온 기분을 낼 수 있고, 대체로 가게들도 중소기업 수준으로 큰 편이라 맛도 기본은 한다. 통나무집닭갈비, 토담닭갈비, 샘밭닭갈비 등이 유명하다. 이 곳까지 왔다면 근처에서 카페까지 해결 가능하다. 닭갈비집에서 함께 운영하는 카페들도 많지만, 1순위로 방문해야 할 곳은 역시 그 유명한 원조 감자빵의 카페 감자밭이다. 그 외 어스17, 초이랑, 신북커피 등이 유명하다. 날씨가 좋다면, 강을 끼고 있는 곳으로 방문하여 야외에서 여유롭게 풍경도 즐기는 것을 권해본다.
닭갈비가 내키지 않는다면, 혹은 지난 번에 닭갈비는 먹었으니 이번엔 다른 게 먹고 싶다면, 막국수가 있다. 남춘천역 주변에 삼대막국수도 유명하고, 15분 정도 걸어가면 남부막국수도 괜찮다. 물려받은 형제가 나뉘어 원조 싸움을 한다는데, 경찰서 맞은편이 낫다고 하니 참고. 막국수 메뉴 자체가 슴슴하니 맛있고 소화도 잘 돼 부담이 없다. 두 명 이상이라면 감자전도 추가해주면 더 좋다.
3. 인스타에 엄청 큰 카페들 많이 봤는데?!
춘천의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인 구봉산 카페거리도 갈 만하다. 산토리니, GC아뜰리에(곤트란쉐리에), 파미르 등이 유명한데, 사실 산 중턱에 위치해 뷰가 셀링 포인트기 때문에 근처 스타벅스나 이디야에 가도 괜찮다. 문제는 어떤 카페를 가건 평일 낮이 아니라면 웨이팅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 이 주변에서 제일 볼만한(?) 건 네이버일 것 같은데 들어갈 수는 없다. 카페와 카페 사이에 네이버 데이터센터가 넓고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춘천시가 네이버에 속아서 내준 땅이라고 한다) 산에서 좀 더 내려오면 펜션과 붙어있는 엄청 큰 카페 모토모토가 있다. 여기엔 무려 수영장도 있다. 대충 비슷한 방향으로 오다보면 동면에 리퍼블릭, 그리고 동내면에 카페드220볼트와 그린보드가 있다. 반대방향으로 거슬러 가면 동면에 일명 손흥민 카페인 '인필드'도 있다. 거기서 소양강 쪽으로 쭉 가면 웬만한 운동장보다 클 것 같은 '소울로스터리'도 운치 있고 좋다. 다만, 이 모든 곳은 도보/대중교통으로 방문하기는 불가능한 수준이므로 (감히 LA에 비견할 만하다), 자차 또는 렌트로 이동하는 경우에 추천한다. 대체로 외진 곳에 큼지막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택시 잡는 것도 수월하지 않다.
한편, 춘천역에서 하차했다면 바로 근처에 10-15분 정도 걸어가면 리버레인이 있다. 레고랜드가 있는 하중도를 강 건너로 마주하고 있는 곳이라서 뷰가 괜찮다.
4. 명동과 레트로
춘천에도 명동이 있다. 과연 이름값 하는 동네로, 춘천시청이 있고 온갖 은행들이 모여있는 구도심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닭갈비집들이 모여있는 세 곳 중 한 군데이기도 하다. 정작 닭갈비집은 가본 적 없지만, 소개하고픈 전통의 맛집들이 많다. 함지레스토랑은 무려 40년 넘게 영업 중인 전통있는 경양식집이다. 가격은 만원 후반대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가벼운 편은 아니지만, 춘천을 대표하는 레스토랑 중 하나이니 추천한다. 전통은 좋은데 가성비를 원한다면 튀김만두와 쫄라 등을 먹을 수 있는 분식집이 있다. 재미있게도 시장 골목 들어가면 비슷비슷한 가게가 세 군데 모여있다. 팬더하우스, 또또아, 별미당이다. 위생이나 친절도나 맛이나 사실 거기서 거기니까 그냥 내키는 대로 가면 된다. 크렘은 옛날 대학가에 있을 법한 약간 어두침침하고 깔끔하지 않은(!) 카페인데, 무려 5-6천원에 케이크 한 조각과 음료를 먹을 수 있어서 종종 방문한다. 굉장히 불친절함에도 가격 때문인지 늘 어린 학생들로 붐비는 곳. 한편, 육림고개라고 해서 청년사업가들을 위해 사부작사부작 노력했던 것 같기도 한데 구도심을 살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닌지, 듬성듬성 공실도 많이 보여서 기대보다는 좀 쓸쓸한 풍경을 마주하기도 한다.
5. 박물관과 복합쇼핑몰(!)
나처럼 여행의 주요 목적이 박물관이자 미술관인 사람들이라면 국립춘천박물관도 가볼 만하다.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건축물 자체가 독특하기 때문에 구경하기 좋다. 최근엔 이건희 전을 진행 중이고 (사진 참조) 선림원 터 금동보살입상 특별전시도 하고 있다. 근처에는 무려 '복합쇼핑몰(!)'인 ENTA가 있다. 강원도 내에는 백화점이나 쇼핑몰이라고 할 만한 곳이 많이 없는데, 그 와중에 농협에서 ENTA를 오픈했고 아웃백, 올리브영, 메가박스 등이 입점해있다. 근데 사실 춘천까지 놀러와서 영화볼 건 아니고, 이 주변에도 맛집이 많다. 타코페퍼는 타코러버인 내게도 굉장히 만족스러운 곳이었고, 마들렌12는 사장님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친절하신데다 마들렌이나 음료도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오브유러피안 에스프레소바는 춘천에도 이런 곳 있다!!라고 할 만한 멋진 에스프레소바. 석사 사거리의 갬성 넘치는 카페인 무재커피를 지나 공지천까지 쭉 내려가면 전통의 대원당을 만날 수 있다. 군산에 이성당, 대전에 성심당, 그리고 춘천에 대원당! 앞의 두 빵집처럼 특별한 메뉴가 있거나 대단히 맛있는 건 아니지만, 오랫동안 자리를 지킨 빵집 특유의 정다운 느낌이 있다. 다만, 최근에 신축이전한 덕에 삐까뻔쩍하니 오히려 먹고 가기에 더 좋을 수도. (+나와 함께 방문시 사장님이 큰 빚을 져서 이전이 무산될 뻔 했다거나 하는 굳이 알고 싶지 않은 TMI 대방출 가능)
6. 뷰도 즐기고 뭔가 특별한 것도 즐기고 싶어
남춘천역 또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공지천 쪽으로 쭉 빠지면, 특히 봄에 벚꽃길을 볼 수 있다. 다만 한창 때는 꽃보다 사람을 더 많이 구경하게 될 수도 있다. 공지천 조각공원에서는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여름 밤에는 돗자리 깔고 치킨 시켜 먹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그 바로 앞에는 알쓸신잡에서도 다녀간 이디오피아 카페가 있고, 참전기념관도 있다. 공지천교를 건너오면 TV에도 몇 번 나온 맛집, 라모스버거가 있는데 춘천의 대표적인 수제버거 가게이다. 공지천을 따라 끝까지 걷다 보면 춘천MBC가 나오고, 그 근처에도 카페들이 있지만 좀 더 걸어가면 있는 상상마당의 댄싱카페인 쪽을 더 추천한다. 상상마당에는 다양한 볼거리들이 있고 소품샵도 있어서 한적하게 의암호 뷰를 즐기며 시간 보내기에 좋다. 이 근처까지의 길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무리들도 많다. 봄이나 가을, 선선한 날씨에 걷다보면 기분이 절로 상쾌해진다.
7. 많이 걷기는 싫고 시간도 별로 없다면
남춘천역 혹은 버스터미널 주변에서 도보 30분 내로 해결 가능한 코스라고 할 만하다. 연이네초밥은 굉장히 작은 곳이라 예약하지 않으면 먹기 어려울 때가 많은데 가격대비 초밥의 퀄리티가 굉장히 훌륭하다. 경춘선길을 따라 풍물시장 구경을 하는 것도 재밌다. 매 2일, 7일에 열리는 5일장으로, 갓 구운 김이나 막 튀긴 뻥튀기, 가끔 도넛같은 걸 사먹으면 맛있다. 풍물시장을 따라 쭉 걷다보면 명동우미닭갈비나 함가네닭갈비집이 있는데 돌돌 말아주는 누룽지볶음밥이 시그니처로, 평일인데도 저녁 7시면 재료가 소진되어 마감하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인기 있다. '자유빵집'은 두 군데가 있는데, 2호점이 버스터미널에서 도보 1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다. 대파빵, 잠봉뵈르, 소금빵 등이 유명하고 다른 빵들도 괜찮으니 한 번쯤 들러 포장해가는 것을 추천. 근처 코우커피도 프렌치토스트가 맛있고 인테리어가 멋진 곳이라 가볼 만하다.
남춘천역에서 5분도 안 걸리는 바로 앞에는 찐커피맛집 '커피블루아울'이 있는데, 이 곳의 에스프레소 콘 판나코타는 진심 제발 한 번만 먹어주시길. 이게 '찐이다' 싶다. 거기서 코너만 돌면 '그날의 우리'가 있다. 무려 몬테크리스토를 팔고, 파스타나 디저트도 먹을 만하다.
8. 내가 사랑한 곳들
도청 근처의 '모요'는 내게 휘낭시에의 참된 맛을 알려준 곳이다. 기본 휘낭시에 2,700원부터 무화과나 솔티초코 등이 3,200원으로 다른 곳에 비해 비싼 편도 아니고 종류도 다양한 데다 정말 모두 맛있다. 조용하고 감성적인 분위기까지 더해져 자주 가고 싶은데 평일 오후 6시까지만 오픈하기 때문에 늘 아쉬움에 허덕인다.
남춘천역에서 조금 걸어가면 '공감'이 있다. 후기에 칭찬 일색이길래 궁금한 한편으론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 하는 쫌 삐딱한 맘으로 방문했었다. 오후라 웬만한 건 솔드아웃이었고 그나마 남아있던 하나를 주문해서 먹어봤는데 한입 떠먹는 순간 '아 이래서' 하고 모든 후기들을 이해할 수 있었고 먹어보지 못한 다른 메뉴들이 절로 떠올라 슬퍼졌다. 한동안 문을 닫았다가 역과 가까운 곳으로 이전해 재오픈했는데 규모도 한결 커지고 생산량(?)도 많아진 듯해서 소진 걱정은 덜었다. 예측 가능한 '맛있는 맛' 그 자체다.
시청 주변에 오이트 에스프레소 바가 있다. 서울에서 막 에스프레소바가 생기기 시작할 때부터 있었는데, 그냥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힙함이 샘솟는 듯한 재미난 곳이다. 카페에서 시청을 끼고 쭉 오면 있는 파익스피크소다는 신기하게도 탄산음료들을 다양하게 조합하여 파는 곳으로 미쿡갬성 가득하다. 테이크아웃만 가능하지만, 서울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신비로운 세계에 관심이 있다면 강추한다. 시청을 벗어나 명동에서 쫌 더 터미널 쪽으로 내려오면 JOC젤라또가 있다. 내가 아는 한, 춘천의 유일한 젤라또/아이스크림집이다. 매일 라인업은 조금씩 바뀌는 것 같은데 소르베든 젤라또든 원재료의 풍성한 맛이 잘 느껴지고 깔끔한 맛이어서 좋아한다.
9. 그 외에
레고랜드는 춘천에서 내세우고 있지만 나도 가본 적이 없고 아직까지는 실패작(...)이라는 평가가 많은 듯하다. 춘천역에서 내려 소양강쪽으로 가다보면, 스카이워크가 있고 소양강처녀상이 있다. 대체 이게 뭐라고... 이게 왜... 싶기는 한데, 또 춘천에 왔으니 한 번쯤은 구경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춘천에서 쓸 수 있는 상품권으로 돌려주니 그다지 손해보는 건 아니다. 그 앞에서 소양2교를 건너면 바로 피자스테이션이라고 옛 느낌의 '콤비네이숀' 피자를 맛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치즈 듬뿍의 피자가 푸짐하게 나온다.
한편 앞서 말한 곳들과는 제법 떨어져있지만, 삼악산 케이블카도 경험해볼 만한 것 중 하나다. 다만, 근처에 추천할 만한 카페나 맛집이 없어서, 당일치기 코스라면 비효율적인 동선이기 때문에 굳이 추천하진 않는다.
남춘천역과 춘천역, 도청, 법원 정도를 테두리 삼아 둥글게 원을 그려보면 나의 생활권(!)이라 할 만한데, 춘천에만 있는 특별한 공간은 아니지만 갬성갬성하거나 힙한 곳들이 제법 있다. 어쩌다농부는 점심만 가능한 극악의 영업시간이지만 깔끔하고 담백한 맛으로 한 번쯤 가볼만하고, 녹색시간은 성수 느낌의 브런치를 맛볼 수 있다. 시청 건너로 넘어가면 최근 1-2년 내에 오픈한 애즈애즈나 볼드커피프로젝트, 스넬커피로스터스 등 세련된 카페들과 교토정원, 로다운컵 등 단골들이 많은 업력이 느껴지는 카페들이 있다. 수크레11구는 화려한 케이크를 파는 로맨틱한 분위기의 베이커리 카페이고, 모민은 레몬젤리, 바나나크림케익 등 서울에서도 한 번쯤 봤을 법한 디저트 메뉴들을 내놓고 있는데 퀄리티가 제법 괜찮은 편이다. 레이아웃은 저녁에는 와인바를 겸해서, 피자나 파스타도 주문이 가능하다. 키리엘도 독특한 시그니처 음료가 있어 방문할 때마다 메뉴 고민의 재미가 있는 곳이다. 쓰면서도 계속 떠오르는데다, 강원대나 춘천교대, 한림대 등 대학 근처에도 인상적인 공간들이 많은데, 다 꼽자니 끝이 없을 것 같아 이는 기회가 된다면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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