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24의 게시물 표시

길게 그리고 멀리 보기

  여러가지 좌절감을 맛 보는 한 해의 끝이다. 어차피 지키지 못할 것을 알고 당초에 별다른 목표를 세우지 않았건만도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는 좌절감이 든다. 아주 사적인 영역인 가사와 육아에서부터 사회적인 성취도를 가늠하게 하는 업무적인 영역까지, 한해를 곱씹어 보았을 때 스스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만한 부분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슬프다. 사실 꽤 오래 전부터 이런 종류의 우울감을 겪어왔다. 때로는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추켜세우기도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는 누군가로부터의 인정, 납득 가능하고 객관적인 지표로 나타낼 수 있는 성취를 토대로 한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빠른 승진이라거나 글쓰기 대회 입상이라거나 하는. 유치하지만 수 년간 이런 인정욕구가 채워지지 않았던 것 같다. 사적인 영역도 마찬가지, 올해도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다. 올해 단 하나의 목표는 ‘아기에게 화내지 않기’였음에도 그마저 지키지를 못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어떻게든 고집을 꺾으려고 압박을 한 적도 많다. 아직 만 두 살이 조금 지난 아기에게 말이다. 이렇다 보니 우울감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곤 한다. 알고 있는 답은 그저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뿐. 그리고 지키지 못하더라도 또 한번 결심하고 또 한번 의지를 다져야한다는 것. 이런 좌절감은 결국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이 점이 긍정적이라면 긍정적이겠다. 내가 원했던 모습의 37살은 아니지만 아주 오래 전의 나와 비교하면 분명 더 괜찮아진 부분이 있으므로 길게 그리고 멀리 보기로 한다. 내년 이맘때의 나는 지금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겠지만 10년 후의 나는 또 한 발자국 성장한 사람이 되어있길 바라며 올해 보고, 듣고, 읽고, 느꼈던 것들을 정리해 본다. #본 것   올해는 아기가 어린이집에 다닌 어린이집 특수를 맛 본 고로 예년보다 훨씬 많은 영화를 보았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이거다!’ 싶을 만큼 마음에 드...

2024년은 이미 글렀으니 2025년엔 달라진 나를 노린다

      매년 한 해를 떠나보내면서 이런 감상이 들지 않는 연도가 있으랴 . 그런데 2024 년은 정말 ‘ 찐 ’ 이었다 . 나라 안팎으로 너무나 많은 이슈와 사건사고들이 있었고 또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다 . 심지어 이 글을 쓰는 12 월 29 일인 오늘에도 말이다 . 나 개인적으로는 + 든 - 든 일상에 아주 크게 변화가 없었던 2024 년이었기에 기분이 더욱 묘하다 . 여름철에 한 달 정도 팀 내에서 알게 모르게 은따로 힘들었던 것이 가장 큰 일이려나 . 은따라는 단어도 10 대 때나 입밖에 내어 봤을 단어 같아서 오글거리기 짝이 없지만 이 외에 달리 찰떡같이 표현할 길이 없다 . 또한   한국 귀국 후 회피하고 회피하던 건강검진에서 역시나 (90% 이상은 음주 때문일 ) 생애 최대 몸무게 달성 및 복부 지방과 비만 수치가 건강에 빨간불이 들어올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도 2024 년을 기억하는 기록으로 남을 것 같다 . 내년 말에 뉴스레터를 쓸 때면 아주 조금이나마 가벼워진 내가 되어 있기를 희망 , 아니 약속해 본다 .   하여간 내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 올해 마지막 뉴스레터에서는 알게 모르게 전통으로 자리잡은 연말 특집 뉴스레터답게 다른 친구들의 글이 주인공이다 . 가장 좋았던 글을 뽑았다고 해서 다른 뉴스레터들이 그것보다 완성도와 내용이 덜 하다는 뜻이 결코 아님은 굳이 덧붙일 필요도 없겠지만 , 그래도 노파심에 언급하고 지나가고 싶다 . 지민   애초에 우리의 뉴스레터 타이틀이 ‘ 무임승차 ’ 인 것 자체가 서로의 문화적 경험에 무임승차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 즉 내가 직접 ...

2024년 회고와 2025년을 향한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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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상반기: 연구와 일, 그리고 짧은 여행 2024년 상반기는 여러 연구 사업에 지원하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그 와중에 가족들과 함께 잠시 일본 여행을 다녀온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또 하나 큰 변화라면 학술지 편집간사 일을 새로 맡게 되었다는 점이다. 낯선 업무라 긴장도 되고, 처리해야 할 새로운 일들이 많아 어리둥절했지만, 그 과정에서 배움이 컸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간간이 아르바이트도 했다. 대학원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나의 시계는 학교 일정표에 맞춰 흘러가고 있다. 4월에는 부산에 있는 부산대학교에서 열린 문화사회학회 발표에 참석했고, 6월에는 한국사회학대회로 포스텍이 있는 포항을 방문했다. 가능하면 가족들과 함께 이동하려고 노력했는데, 특히 포항에 갈 때는 아이와 함께 바닷가도 구경하며 잠시나마 여유를 만끽했다. 그렇게 상반기가 어느덧 지나가고 나면 찾아오는 게 바로 여름방학이다. 여름방학 동안에는 학내 자치 활동으로 운영되는 문화사회학회 세미나를 진행하느라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금세 방학이 끝났다. 2024년 하반기: 데이터 사이언스 툴과 결혼·비혼 연구 상반기를 그렇게 바쁘게 보내고 나니, ‘이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면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하반기에는 무려 세 과목이나 청강했는데, 모두 방법론과 관련된 수업이었다. 패널데이터를 활용한 인과모형 심화, R을 활용한 네트워크 분석, 그리고 코랩을 활용한 소셜 빅데이터 분석 수업까지. 쉽지 않은 과목들이었지만, 그만큼 얻는 것도 많았다. 결과적으로 하반기는 각종 데이터 사이언스 도구들을 익히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쏟은 셈이다. 재미있게도 하반기에는 결혼에 대한 연구를 할 기회가 많았다. 비혼, 독신 등 우리 사회에서 결혼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를 살펴보며, 기혼자인 내가 결혼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도 되었다. 물론 하반기에도 각종 학술대회가 이어지다 보니, 그 연례행사들을 치르고 나면 어느덧 겨울방학이 다가온다. 한편 지난여름 우연히 시작된 프로젝트는 ‘성차별과...

값진 무언가를 찾아 헤맸던 366일

  2024년 참 길었던 것 같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꼭 작년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많다. 특히 12월은 한달이 아니라 한 10년쯤 산 것 같은 가속노화의 매일, 아니 매시간을 버텨내고 있다. 연초에 썼던 나의 인생 서랍 속 간식들을 보는데, 그야말로 새삼스러웠다. 그랬었지, 그러고보니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해냈구나(?)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식으로 연말정산을 해봐야겠다. [영화] 올해 영화관에 자주 가진 않았어도 영화를 적지 않게 봤다고 생각했는데, 확인해보니 영화관에선 고작 여섯편을 봤다. 월에 한 번은 보려는 게 목표였는데, 그 반이라니 어쩐지 충격적이다. 모든 걸 제쳐 놓고 보고 싶은 작품이 많지 않기도 했지만, 의욕이나 기력이 많이 소모된 것 같다. 그래도 파묘는 기대만큼 좋았다. 그래도 연초의 기대 속에선 천만명의 영화라곤 생각 못했는데 무려 올해 우리나라 영화 흥행 1위로 남았다. 데드풀과 울버린 역시 기대를 후회로 남지 않게 해줬다. 덕후의 덕심을 잘 채워준 재밌고 알찬 작품이었다. 매드맥스 프리퀄인 퓨리오사:매드맥스 사가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보다는 좀 아쉬웠던 것 같다. 이미 '아는맛'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프리퀄이란 것이 대체로 꽉 막힌(?) 엔딩이기에 어쩔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가여운 것들은 앞서 본 사람들의 평을 보고 뒷걸음질 쳐서 앞으로도 안 볼 것 같고, 존윅의 스핀오프는 아직 미개봉이다. 대신 듄의 세계를 알게 되었고 베테랑2가 오랜만에 즐거움을 주었다. 가장 최근에 보았던 하얼빈은 수작일수는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특별히 좋은 점을 꼽으라고 하면 말할 것이 없는 플랫한 느낌이었다. 존오브인터레스트나 추락의해부는 놓친 것이 두고두고 후회되는 영화. 그러나 이런 영화들은 돌고 돌아 언젠가 좋은 기회로 다시 만나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그때는 놓치지 말아야지. 바튼 아카데미는 좋다고 하기엔 너무 나이브한 상상력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책] 많이 읽는 것에...

안녕! 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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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다 지나가 버린거지? 2023년 연말호를 작성할 때까지만 해도 뿌듯하게 내년 한 해를 보내리라 다짐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시 2024년 연말호를 작성하고 있다. 정신없이 지나간 2024년, 매년 작성해오던 다이어리도 올해는 작성하지 못해 아쉬움만 남는다. 그나마 사진첩을 거슬러 올라가며 올해의 ㅇㅇ 을 뽑아보았다.  ▶올해의 영화 : 하얼빈 호불호가 갈린다는 평에 약간 겁먹고 봤는데 불호인 포인트가 없어서 당황했다. 시작부터 압도하는 비주얼과 음악 덕분에 완전히 영화에 몰입하여 즐길 수 있었다. 잔인한 장면 또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인물을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여자배우는 전여빈 한 명 뿐이었지만 영화의 적재적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흐름을 바꿔갔다.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안중근 장군의 하얼빈 의거를 향해 달려가는 내내 어느 장면 하나 빌드업이랍시고 지루한 장면이 없었고, 약간의 상상력이 더해진 부분도 납득가능한 정도였다. (물론 내가 주는대로 잘 받아먹는 관객이긴 하지만) 굳이 이 시국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가지고 있을 저 마음 깊은 곳의 작은 애국심이라도 찾아낼 수 있도록 문을 두드리는 영화였다. 영화의 요소 요소들은 2시간 내내 묵직하게 나를 밑으로 잡아당기는 동시에 내 안의 불꽃-삶의 의지-를 끌어 당겨 주었다.  ▶ 올해의 노래 : 네모네모   처음엔 무슨 이런노래가 다 있나 싶었다. 그런데 우선 게임음악 같기도 한 이상한 멜로디에 중독되었고, 나중에서야 가사를 찾아보니 동그라미와 네모에 빗대어 사람간의 관계를 표현한 가사에 한 번 더 중독되었다. (지금 찾아보니 작사에 지코가 참여했다) 무대에서 능숙하게 네모와 동그라미를 그리며 앙증맞은 표정으로 노래하는 예나의 귀여운 모습은 강력한 어퍼컷을 날렸다. 삐뚤빼뚤해 like~ 네모네모 sign 등의 가사와 그에 붙은 멜로디는 마치 게임 사운드 같은 효과를 주었다. 노래가 나온 이후로 출퇴근길 플레이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넣어 다니고 있다. ▶ 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