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그리고 멀리 보기
여러가지 좌절감을 맛 보는 한 해의 끝이다. 어차피 지키지 못할 것을 알고 당초에 별다른 목표를 세우지 않았건만도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는 좌절감이 든다. 아주 사적인 영역인 가사와 육아에서부터 사회적인 성취도를 가늠하게 하는 업무적인 영역까지, 한해를 곱씹어 보았을 때 스스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만한 부분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슬프다. 사실 꽤 오래 전부터 이런 종류의 우울감을 겪어왔다. 때로는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추켜세우기도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는 누군가로부터의 인정, 납득 가능하고 객관적인 지표로 나타낼 수 있는 성취를 토대로 한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빠른 승진이라거나 글쓰기 대회 입상이라거나 하는. 유치하지만 수 년간 이런 인정욕구가 채워지지 않았던 것 같다. 사적인 영역도 마찬가지, 올해도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다. 올해 단 하나의 목표는 ‘아기에게 화내지 않기’였음에도 그마저 지키지를 못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어떻게든 고집을 꺾으려고 압박을 한 적도 많다. 아직 만 두 살이 조금 지난 아기에게 말이다. 이렇다 보니 우울감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곤 한다. 알고 있는 답은 그저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뿐. 그리고 지키지 못하더라도 또 한번 결심하고 또 한번 의지를 다져야한다는 것. 이런 좌절감은 결국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이 점이 긍정적이라면 긍정적이겠다. 내가 원했던 모습의 37살은 아니지만 아주 오래 전의 나와 비교하면 분명 더 괜찮아진 부분이 있으므로 길게 그리고 멀리 보기로 한다. 내년 이맘때의 나는 지금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겠지만 10년 후의 나는 또 한 발자국 성장한 사람이 되어있길 바라며 올해 보고, 듣고, 읽고, 느꼈던 것들을 정리해 본다. #본 것 올해는 아기가 어린이집에 다닌 어린이집 특수를 맛 본 고로 예년보다 훨씬 많은 영화를 보았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이거다!’ 싶을 만큼 마음에 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