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는 여자들

요리는 오랜 세월 여자들을 괴롭히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미식이니 파인다이닝이니 하는 말들이 나온 지도 오래되지 않았거니와 그런 세계에서조차 주인공은 남자이고 여자는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내 주방에 여자는 없다’는 모 드라마의 유명한 대사처럼. 1.5평 남짓한 좁은 주방 안에서 남편과 자식,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애써 차려낸 음식을 먹이고 나면 쌩하니 가버리는 가족들 뒤로 홀로남아 뒤처리를 하는 일까지, (우습지만 나 역시 그런 엄마의 희생과 가사의 부조리를 적극적으로 해소해 주지 못했으면서, 하지만 또 어쩌면 그랬기에)요리를 하는 일은 고통이라고만 생각했다 특히 여자에게는. 그래서 요리에는 아주 조금도 흥미가 없는 양 행동했다. 요리를 하는 건 내 자존심을 갉아 먹는 일이라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책 속 요리하는 여자들을 보면 이상하게도 평화로운 그림이 그려진다. 물론 다른 사람이 아닌 스스로를 위한 음식을 만들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경건한 행위, 재료를 고르고(때로는 직접 구하기도 하고) 다듬고 집에 있는 손쉬운 양념들로 순식간에 맛을 낸 후 뜸을 들여 식탁에 내어 놓는 이 요리라는 과정이 물흐르듯 자연스럽고 부드럽고 한편 상냥하기까지해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일종의 의식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호에는 책 속 요리하는 여자들에 대해, 단순반복적인 가사노동으로서의 요리가 아니라 스스로 먹고 싶은 것을 만들어 먹는 즉 요리라는 활동이 주는 순수한 즐거움과 그 능동적인 의미에 대해 써 보고 싶다. 사실 이를 주제로 한 가장 큰 이유는 작년에 읽은 책 그레이스M.조의 “전쟁 같은 맛”에 대한 리뷰를 한번은 써 봐야지 했기 때문이다. 예전 호에서도 살짝 언급했다시피, 이 책은 기지촌 여성이었던 한국인 엄마와 상선 선원이었던 미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내’가 엄마의 조현병 발병 이후 엄마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며 그녀를 한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