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미래와 경험의 멸종(과 머니볼)

  출근하자마자 모니터 한 켠에 제미나이를 띄워놓는 것이 어느새 루틴이 되었다. 출근길에 아아 한 잔을 사서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그럴 법한 자연스러운 그림이듯 한 쪽 모니터에 제미나이를 먼저 띄워 두고 업무에 이용하는 것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하기야 신문물에 항상 뒤늦게 적응하는 나마저도 이런데 다른 사람들은 말해 무엇하리. 그래서인지 요즘은 AI가 진짜 똑똑하다더라, 변호사도 회계사도 망한다더라(안 망한거 잘 압니다;;저보다 훨씬 잘나가시는 분들임^^)하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오지만 사실 그런 찬양과 과장된 우려의 이면에는 그럼에도 아직 나의 자리는 대체되지 않았다는 안도감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먼 미래를 가정하지 않고, 기술이 더 발전할 필요도 없이)당장 내일이라도 어떤 뛰어남의 영역을 두고 인공지능과 인간이 겨뤄야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주장할 수 있을까.

  이 무서운 상황을 먼저 맞닥뜨린 곳이 바로 바둑계이다. 그 유명한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바둑계는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한다. 과거엔 바둑의 세계란 너무 심오하여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한들 기계는 감히 바둑에 범접할 수 없다는 인식이었다면, 이제는 인간은 감히 알파고의 수를 읽어낼 수 없으므로 오히려 알파고를 스승 삼아 바둑을 배워야 한다는 인식으로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이다. 장강명의 책 ‘먼저 온 미래’라는 제목은 바로 여기에서 왔다.

  그럼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뛰어남의 영역을 두고 인공지능과 겨뤄야 한다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무엇일까. 솔직히 간단한 업무 영역, 단순 계산이나 회계 같은 것은 물론이고 자료 해석, 보고서 작성과 같은 지적인 활동까지도 충분히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쯤 되면 이거야말로 오로지 인간만의 활동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 만한 게 바로 순수한 창작의 영역, 즉 예술이 될 것이다. 아직까지는 인공지능이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만큼 작곡을 하거나 셰익스피어나 톨스토이 처럼 글을 쓸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장강명은 여기에 대해 무척이나 비관적인 것으로 보인다. 비록 인공지능이 셰익스피어나 톨스토이처럼 걸작을 쓰지는 못하더라도 장강명(씨 죄송;;) 수준의 글 정도라면 최소 한 달에 한 권은 뚝딱 만들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인간으로서 심히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누군가는 질 좋은 작품의 생산에 초점을 맞추어 인공지능이 만들었든 사람이 만들었든 작품 자체의 작품성과 경쟁력을 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겠지만, 어느 정도 평균 이상의 작품을 쉴 새 없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압도적인 인공지능의 존재는 인간의 창작욕구를 꺾어버리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평균 이상의 작품을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와 품질로 만들어 내는 인공지능이 등장했다고 가정해 볼 때 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대략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1. 창작자가 인공지능인지 여부와 싱관 없이 질 좋은 작품의 생산에 초점을 두고 서로 경쟁할 수 있다는 입장(현상유지) 2. 압도적인 창작력(또는 생산력?)을 지닌 인공지능에 무력함을 느껴 창작을 포기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입장 3. 오히려 인공지능을 스승 삼아 더 좋은 창작을 할 수 있다는 입장.(바둑계 역시 이렇게 세 갈래로 부류가 나뉘었다.)

  그런데 이렇게 정리하고 나면 무언가 빼먹은 듯한 찜찜함이 남는다. 바로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들은 항상 작품 너머 창작자의 세계를 생각하고 상상한다. 노래 한 곡에도 그것이 몇 번 트랙인지 어떤 앨범 다음에 나왔는지 혹은 그간 아티스트의 일신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되짚어 가며 내러티브와 의미를 부여하게 되지 않던가. 어떤 작품의 리뷰나 평론에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심심찮게 들어가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인공지능이라는 강력한 상대 앞에 내밀 수 있는 무기라는 게 인간 삶의 서사 혹은 그로부터 오는 감동이라는 게 조금 얄팍한가 싶다가도 당장은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고 또 무시하기에는 내게는 그런 것들이 꽤나 중요하게 느껴진다. 

  물론 ‘먼저 온 미래’에서 느껴지는 비관은 인간을 무시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만의 고유 영역을 절댓값으로 꼭 남겨놓고 싶기에 갖은 증거와 반박을 들며 ‘이래도? 이래도 정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게 있어?’라고 하는 처절한 질문에 가깝기는 하다. 그런데 여기서 왜 인간의 감정과 마음을 빼고 얘기하는지 그게 책을 읽으면서 내내 의문이었다. 감정과 마음은 뛰어남의 영역을 두고 겨룰 성질이 아니어서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거칠고 서툴어서 느껴지는 아름다움 역시 결코 가짜는 아닌 것인데.

  장강명은 창작자의 내면과 무관하게 아주 뛰어난 작품이 나올 것을 가정하지만 나는 그 전제가 절반은 틀렸다고 본다. 받아들이는 사람은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창작자의 내면을 상상하고 이야기를 덧붙인다. 그래서 (적어도 감상자가 인간인 이상) 창작자의 내면과 무관하게 아주 뛰어난 작품은 나올 수도 없고, 나온다 해도 정작 우리는 그것을 뛰어난 작품으로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참고로 프로반박러인 작가는 이 역시도 걱정하지만(즉 아주 위대한 걸작이 나왔으나 인간의 눈에는 그저 암호문처럼만 보이는) 이미 인간이 감상의 주체가 아니라면 애초에 이런 걱정들이 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나는 조금은 낙관을 하고 싶다. 인공지능이 호환마마라도 되는양 너무 두려워할 것은 없다고.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바둑의 기풍이 없어지고 바둑을 읽는 재미가 없어졌다는 입장도 있지만 반대로 인공지능의 수 덕분에 승부에서 이기기도 하고 바둑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는 입장도 있다. 게다가 꼭 이기는 것만이 바둑의 전부가 아닌 것처럼 인공지능과의 승부로만 탁월함을 정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일 뿐이다. 그게 그렇게 슬픈 일은 아니지 않나.

  디지털 시대를 다룬 또 다른 책 크리스틴 로젠의 ‘경험의 멸종’은 어쩌면 이 ‘먼저 온 미래’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책에 가깝다. 아날로그적 경험과 인간만의 가치를 너무 중시한 나머지 기술을 불필요하게 깎아내리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논리적 비약도 많이 보여서 오히려 이거야말로 너무 순진한 대응 아닌가, 인공지능 편을 들고 싶어질 정도로. 하여 ‘먼저 온 미래’와 ‘경험의 멸종’ 딱 이 중간 정도 되는 책을 읽고 싶어진다.

  그래서 또 떠오른 영화가 야구를 다룬 영화 ‘머니볼’이다.(어차피 글도 길어졌고 주제도 없고 중언부언하게 됐으니 걍 생각나는 대로 다 써보자...!) 바둑에도 야구에도 완전히 문외한이나  ‘먼저 온 미래’를 읽는 동안은 ‘머니볼’이 계속 떠올랐다. 정적인 두뇌게임과 동적인 스포츠, 표면적으로는 아주 다른 세계에 있는 활동 같지만 그 이면에는 승부를 위한 수만가지(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냥 수식어로 받아들여 주시면 감사합니다요...) 전략과 시뮬레이션이 펼쳐진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머니볼’에서 만년 꼴찌팀 오클랜드의 단장이 된 브래드피트(극 중 빌리빈)는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팀을 운영한다. 야구에 통계학적 분석론을 도입한 ‘세이버메트릭스’ 기법을 활용하여 실력이 좋은 선수는 내보내고 실력이 그보다 떨어지는, 그러나 승리를 위한 통계학적 전략에는 더 잘 들어맞는 선수를 기용하는 식으로 팀을 운영하는 것이다. 결과는? 메이저리그 20연승, 감이나 경험과 같은 인간의 암묵지가 아닌 통계학적 데이터로 승리한다는 점에서 알파고의 승리와 가히 비교할 만하지 않은지. 더구나 찾아보니 이제는 세이버메트릭스도 옛말이고 공과 선수, 경기장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움직임들을 추적하고 수치화하여  분석하는 ‘스탯캐스트’ 기법이 일상화된 듯하다. 결국 야구든 바둑이든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것은 방대한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메탈릭한 사이버 세계에서 감정 없이 기계에 길들여진 인간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되레 나는 머니볼에서, 알파고와의 패전 이후 이세돌의 인터뷰에서 한없이 인간다운 감정을 느꼈다. 뭉클함인 것 같기도 하고 연민인 것 같기도 한 그 무엇보다 인간다운 감정을. 이런 감동을 역설하는 것이 기계에 비해 인간이 뛰어나지 않음을 인정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뭐 내가 인간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니까. 아무쪼록 다가올 미래에서도 인간의 건승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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