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좋은 친구


 다양한 문화 경험을 공유해주는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내 뉴스레터에는 대부분은 추리소설 아니면 동물 얘기만 반복되어서 송구스럽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두 가지 재료를 섞어서 ‘동물이 핵심 소재인 추리소설’이라는 새로운 주제(?)로 간단히 글을 써 보았다. 익숙한 맛 두 가지를 조합하면 그래도 그 맛은 새로울 지도 모르니 말이다. 애초에 모든 추리소설의 원형으로 평가되는 <모르그 가의 살인> 부터가 동물을 반전의 소재로 이용하기도 했었다. 여기서는 모르그 가의 살인은 너무 클래식하니 제외했지만. 


코난 도일 <바스커빌 가의 개>

 “하지만 그날 밤 개는 짖지 않았는데요.” / “그러니까 그게 문제라구요.”

 셜록 홈즈 시리즈 중에서도 손에 꼽게 유명한 장편이다. 어딘가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시골 마을과 무언가를 두려워하며 숨기는 듯한 주민들, 광활한 대저택,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지옥개’에 대한 무서운 전설 등 공포와 추리 요소가 잘 어우러져 있다.

니키 에츠코 <고양이는 알고 있다>

 일본에서 여성 최초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여성 추리작가 니키 에츠코의 데뷔작이다. 작가와 이름이 같은 니키 에츠코라는 주인공이 오빠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장편으로, 제목 그대로 사건의 트릭 자체에 고양이가 이용된다. 


송시우 <좋은 친구>, <누구의 편도 아닌 타미>

 내가 좋아하는 송시우 작가의 단편집 <아이의 뼈> 에 수록되어 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고양이는 알고 있다> 처럼, 이 제목 역시 단순한 제목이 아닌 사건의 진상을 암시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개는 야생성을 잃고 인류의 가장 가까운 반려동물로써 살아 온 역사가 매우 길다. 그만큼 개는 단순한 짐승이 아닌 인간의 좋은 친구로 여겨지고 있는데, 결말을 읽으면 <좋은 친구>라는 제목이 얼마나 탁월한지 고개를 끄덕이게 될지도 모른다. 


 같은 단편집의 <누구의 편도 아닌 타미>에서는 분리불안이 매우 심한 닥스훈트를 키우는 왕기숙 씨라는 회사원이 주인공이다. 기숙 씨는 탐정 역의 주인공이지만 형사도 법조인도 아니고 그저 덜렁대고 소심해 보이는 평범한 경리 사원이지만, 의외로 날카로운 관찰력과 사고회로를 지니고 있다. 여기에서도 반려견 타미의 이상 행동을 관찰하고 분석하여 결정적인 증거를 밝혀낸다. 소시민 탐정이 등장하는 코지 미스터리 (일상 미스터리) 에 잘 어울리는 기숙 씨와 타미는 이후 송시우 작가의 단편에 두세 번 더 출연했다. 



황세연 <40원>

 (스포주의) 

 2023년 출판된 앤솔로지 < 드라이버에 40번 찔린 시체에 관하여> 에 실린 황세연의 단편이다. 이 앤솔로지에는 한국추리작가협회 40주년을 기념하여 여러 추리작가들이 모여 40이라는 숫자에 맞춘 다양한 소재로 쓴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주인공은 로또 1등에 당첨된 사실을 알고 수령금을 독차지하기 위하여 친구를 죽이기로 한다. (친구를 왜 죽였지는 사실 기억이 안 난다. 아마 살해 이유는 다를 수도 있다) 수면제를 먹인 친구를 트렁크에 싣고 인적이 드문 시골 어딘가의 산에서 죽이고 묻어버리고자 운전을 하던 중 들개를 치어 죽이고 만다. 사람을 친 것도 아니니 무시하고 그대로 산으로 친구를 옮겨 살해하려던 찰나 죽은 들개의 가족, 친구 무리로 추정되는 무리들이 무섭게 주인공을 쫓아오고 기절해 있던 친구는 들개들에게 물려 죽어버린다. 주인공은 들개 무리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쳐 산 아래로 내려오는 것까진 성공하지만 때마침 저혈당으로 인한 쇼크가 온다. 

 다행히 산 아래에 커피 자판기가 있어 단맛이 나는 커피라도 뽑아 마시려고 하지만 주머니와 차에 있는 현금을 모두 털어도 40원이 부족하다. 로또 1등이라는 거액을 눈 앞에 두고 40원 때문에 생사가 오고가는 주인공의 절박함이 메인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주인공을 위협하는 들개 무리 덕분에 매우 통쾌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 앤솔로지를 직접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너무나 쉽게 개를 키우고 버리는 유기범들이 모두 이런 복수를 당하면 얼마나 통쾌할까. 주인공은 끝까지 그 들개 무리가 실제로 주인공이 유기한 개가 야생에서 번식하여 낳은 개체들인지 여부는 정확히 모르지만 당연히 추리소설에서는 그 애매함과 불확실성이 매력이다. ‘내 목숨을 가져가려는 저 들개가 내가 버린 개들의 후손일 수도 있다’라는 공포는 ‘내가 과거에 저지르고 묻어 두었던 악행이 어떻게 나의 발목을 잡을지 모른다’는 현실적인 업보와 죗값에 대한 두려움이다. 현실에서 공권력조차도 유기를 추적하여 처벌하기 쉽지 않으니 이런 가상의 스토리에서라도 유기범들에 대한 벌과 사필귀정을 통해 대리만족해 본다. 


장우석 <고양이 탐정 주관식의 분투> 

 아파트에서 벌어진 새끼고양이 실종 사건을 추적하는 소소한 일상 미스터리. 주인공 주관식은 수학자이자 집 나간 고양이들을 찾아주는 고양이 탐정이다.  다행히 결말도 훈훈하여, 보통 피와 시체, 배신, 사기 등이 난무하는 본격 추리소설들로 인해 정신이 피폐해졌을 때 힐링받기 좋다. 수학자 주관식을 주인공으로 하는 단편집 <고양이가 정답이다> 도 출간되어 있다. (이 책은 아직 읽지 않아서 추천으로 넣지 않음)


 (스포주의) 

 그리고 여러 AI에게 물어봐도 밝혀내지 못한 단편 하나. 분명히 <계간 미스터리>라는 잡지에 수록되어 있던 단편인데 AI도 아예 모르거나, 혹은 반전의 내용을 던져 주고 작품명을 찾아달라 하면 존재하지도 않는 작가명과 제목, 줄거리를 지어내어 대답하는 바람에 알아내기를 포기했다. 참고로 계간 미스터리는 서울시나 경기도 전자도서관의 잡지 코너에서 전자책으로 무료 열람이 가능한데 지금도 되는지는 모르겠고, 일일이 여태까지 출간된 계간 미스터리 과월호를 다 확인하긴 솔직히  너무 귀찮다.

 소설이 남성의 시점인지 ‘아이’의 시점인지 그리고 남성이 킬러였는지 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남성이 어느 범죄 현장에서 홀로 남겨진 ‘아이’를 발견하고 데리고 다니다가 마지막에 ‘아이’가 사람 어린아이가 아닌 강아지였다는 서술트릭이 핵심인 단편. 작가도 제목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반전이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 이유는, 나 혼자 예전부터 생각해 놨던  서술트릭인데 -독자에게 사람 아이인 것처럼 오인시키고 나중에 알고보니 강아지라는 반전- 역시나 누군가가 이미 같은 발상을 하고 실천까지 했구나 우울했었기 때문이다. 

 

 대충 생각나는 작품들만 이 정도고 사실 추리소설 외에도 동물을 소재 그 자체로 한 창작물은 수도 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추리, 범죄를 다루는 창작물에서 동물이 결정적인 소재로 활용될 때의 매력은 아마도 동물은 선악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인간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범죄에 이용하든 주인을 위한 결정적인 증거를 갖고(?)있든 간에 그것은 동물들 스스로의 가치 판단이라거나 선택이 아니다. 송시우 작가의 <누구의 편도 아닌 타미>라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타미는 특별히 인간 세상의 정의라거나 주인을 위해 스스로 행동하여 도움이 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바스커빌 가의 개>에서 살인을 위하여 사육된 사냥개 역시 살인이 나쁘다거나 좋다거나 하는 가치 판단을 할 줄 알아서 사람을 물어 죽인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본능에 따라 훈련되거나 행동할 뿐이다. 그야말로 누구의 편도 아닌 동물들이 선악, 옳고 그름, 법 등 인간 세계의 복잡한 셈법과 관계 없이 그저 본능에 충실한 결과 인간에게 가져오는 이익과 손해, 거기에서 오는 카타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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