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 공연 해 봤니? (꺼드럭)
이번 호는 ‘서로의 경험과 문화생활에 무임승차한다’는 우리 뉴스레터에 걸맞는다고 당당하게 큰소리칠 수 있는 글을 썼다. 세상에 해 본 사람, 앞으로 할 사람보다는 못 해 본 사람이 더 많은 경험일 테니까.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합류하여 첫 연습부터 인생 처음으로 공연장 무대에 서 본 기억을 간추렸다.
어렸을 때 잠시 배우고 20여년을 잊고 살던 플루트를 작년 초부터 다시 시작했다. 개인레슨을 받은 지도 어느덧 1년 반. 실력은 미천하지만 플루트끼리 혹은 다른 악기와 합주할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싶었다. 지금 개인 레슨을 받는 선생님이 플루트 그룹 레슨도 운영하고 계셔서 실은 작년 가을쯤부터 이미 그룹 레슨도 수강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레슨 장소가 일반적인 음악학원이 아닌 교회이다보니 나 빼고 모두들 (열성적인) 교회 신자이시라는 점이다. 연주곡도 찬송가가 많이 섞여 있고 무엇보다도 그분들과 연습 및 사담 등을 하다 보면 반드시 교회 다니라는 전도의 말씀(?)을 듣게 되기에, 좋은 분들이지만 상당히 부담이 쌓여 있는 상태였다. 또한 본가에서 성남시로 이사하면서 레슨 장소까지 편도 3시간이 걸리는 부담스러운 거리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개인 레슨은 선생님과 협의하여 시간대나 요일을 조절할 수 있고 기본 레슨 시간이 토요일 오전 11시여서 출석이 아주 힘들지는 않아서 계속 받고 있지만, 그보다 이른 오전 9시에 시작하는 단체 레슨은 어느 순간부터 아예 출석하지 않고 회비도 납부하지 않은 채 잠정적으로 탈퇴 상태였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단체 합주와 연습의 필요성을 느껴 인터넷에서 취미 오케스트라 등을 검색하던 중, ‘메리오케스트라’라는 사단법인 단체를 알게 되었다.
메리오케스트라는 누구나 취미로 악기를 배우거나 오케스트라, 합창단 등을 할 수 있는 단체이며, 내가 본 모집공고는 11기 오케스트라에 중도 합류할 단원을 모집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간단한 오디션 영상과 함께 (사실 이것도 귀찮아서 미루고 미루다가 지원 마감일에 부랴부랴 찍었음) 지원 후 5월 말, 첫 연습을 위해 이수역에 위치한 전용 연습실을 찾았다. 너무 오랜만에 완전히 새로운 집단,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여서 괜히 긴장되고 떨렸다. 그러나 스태프 및 목관악기 파트장 분과 인사하고 단톡방에 초대받은 것 외에는 그 어떠한 사담도 없이 바로 연습을 시작하게 되어서 상당히 얼떨떨했다. 가뜩이나 초급인데 오늘 처음 보는 악보를 바로 연주해야 하다니! 나는 가장 낮은 난이도인 써드(3rd) 플루트 파트임에도 내 수준에는 연주곡들이 너무나 어려워 보였다. 그리고 운지, 소리는 그렇다치고 가장 중요한 건 초반에는 내 파트의 쉬는 부분이 언제 끝나는지 감을 못 잡아서 합주 때 멍하니 있다가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보고 후다닥 시작할 때도 많았다.
이렇듯 아무리 100% 취미로 하는 거라지만 내 실력이 너무 부족하다보니 괜히 셀프 위축되는 나날이어서 적극적으로 목관파트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눌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연습이 화요일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여서 끝나면 각자 귀가하기 바쁘고 특히 나는 중도입단인데다가 이수역에서 성남시까지 귀가하려면 1시간 반이 넘게 걸리기 때문에 목관파트는 물론 다른 파트 사람들과도 사적으로 어울릴 기회조차 없었다. 아무리 친구를 사귀려는 목적이 아니라 해도 어쨌거나 사람을 만나는 자리인데, 나 빼고 서로 다 알고 친해보여서 내 성격에 차마 당당하고 뻔뻔하게 끼어들기가 너무 어려워서 나는 10여명의 목관파트 팀원들 이름을 정말 거짓말 안 하고 공연 당일에야 비로소 다 알게 되었다. 그래도 공연 당일 및 뒷풀이 때는 같은 목관파트 및 다른 파트 팀원들과도 통성명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본질인 플루트로 돌아가 보자면, 개인레슨이나 단체레슨 때 해봤던 악보들보다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처음에는 ‘그냥 정기연주회 불참한다고 할까?’를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물론 퍼스트(1st)나 세컨(2nd) 플루트 악보보다야 써드가 쉽겠지만, 운지법과 고음 파트 등이 내 수준에서 아직 어려운 몇몇 마디가 엄청나게 부담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왕 시작한 거 정기연주회 무대는 서보자는 마음으로 레슨 선생님에게 부탁드려서 개인레슨 때 오케스트라에서 할 곡들을 레슨받기도 하고, 운지가 어려운 부분들은 집 근처 무인연습실에서 아예 뇌 빼고 기계적으로 운지법을 연습했다. 무슨 뜻이냐면, 나 같은 초급은 어려운 악보를 보면 ‘이 부분은 이렇게 해야겠다’고 머리는 먼저 맞게 생각하지만 손이 그걸 따라주지 않아서 연주를 절게 된다. 그러니 아예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이 운지가 맞나 의심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외워버린다는 것이다. 또한 높은 고음이어서 삑사리가 잘 나는 부분도 반복해서 연습했다. 이렇게 쓰니까 엄청 열심히 연습한 사람 같은데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긴 하다.
이렇게 5뭘 말부터 7월 말 정기연주회까지 중간에 1번 결석을 제외하고 매주 연습에 참여하고 처음에는 마냥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악보들이 그래도 흉내를 낼 만큼은 연주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내 파트에서 쉬다가 다시 시작하는 타이밍도 여러 번의 합주를 통해 저절로 익혔다. 참고로 연주를 ‘잘’한다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막상 공연이 다가오고 객원단원을 포함한 모든 악기 파트 및 합창단이 모여서 최종 연습을 하다 보니 깨달은 사실. 내 플루트 소리 하나 정도는 충분히 묻힐 수 있다!
전 파트 합쳐서 60여명 이상이 모여서 연주를 하는데다가 소리가 엄청나게 큰 금관악기, 드럼, 북 등이 있기 때문에 소리가 얇고 작은 플루트의 경우 플루트가 단체로 나오는 부분이나 수석주자의 독주(솔로) 마디 정도 아니면 나 한 명의 소리는 티가 아예 나지 않는다. 그래서 어려운 부분, 자신 없는 부분은 무리해서 하다가 괜히 더 악역향을 끼치지 말고 그냥 손가락으로 하는 척만 하고 불지 않기로 속으로 다짐했다. 실제로 공연 당일까지도 삑사리 때문에 어려웠던 몇몇 부분들, 예를 들어 <위풍당당 행진곡>에서 중간에 3옥타브까지 올라가는 파트나 <모리화> 후렴구 같은 곳에서는 진짜로 불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번에 처음 오케스트라 연습 및 실제 공연에 참여하면서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 어떤 일이든 간에 굳이 나까지 잘 하거나 혹은 무리해서까지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누군가는 반드시 나보다 잘 하고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각 파트별 수석주자가 아니면 어차피 혼자 독주할 일은 없기 때문에 나 한 명 삑사리 내거나 운지를 절어도 티가 하나도 안 난다. 즉 남들에게 묻어가면 그만인 것이다. 어렵고 자신 없는 파트는 연주하는 척만 하고, 쉽고 자신 있는 부분에만 집중하면 된다.즉 나 같은 사람은 ‘무임승차’해도 공동체 전체의 안녕에 지장이 없다는 것. 아니 차라리 무임승차하는 편이 공동체를 위해 나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플루트 연주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무임승차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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