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남이 연애하는 거 좋아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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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보면 과몰입 오타쿠의 심장을 가지게 된 건 어렸을 적 읽은 순정만화에서부터였다. 하지만 순정만화의 인기가 시들해진 지 오래이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 로맨스, 멜로, 연애 따위를 다룬 좋은 작품들도 하나둘씩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다 보니 내가 순정만화를 좋아했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살았다. 그러다 이번에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친구로부터 ‘주인공들이 학원에서 만나’라는 애먼 설명만 듣고도 단번에 제목을 맞힐 정도로(애석하게도 지금은 그 만화의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와의 거리 1km였나, 그런 제목이었던 것 같다.)나는 원래 순정만화를 엄청 좋아했다는 사실을.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를 보면서 말이다!   ‘최애를 구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간다’는 설정이 흥미롭기는 하지만 사실 그 외의 이야기는 그다지 새롭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영문을 모르는 남주가 자기를 구하겠다고 온갖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여주에게 황당함을 느끼다가 그 얼렁뚱땅한 그렇지만 또 진심이 느껴지는 모습에 서서히 스며들게 되는 그런 뻔한 이야기겠지, 짐작했다. 여기서 뻔하다는 건 나쁜 게 아니라 알면서도 찾게 되는 익숙한 맛, 우리가 품고 있는 기대를 기분 좋게 충족해 주는 그 필승의 조합을 뜻한다. 그래서 삐걱대고 투닥거리던 서로가 겹겹이 쌓인 오해를 풀고 어느덧 사랑에 빠진다는, 그런 흔한 로맨스코미디물의 공식을 따랐다 해도 아마 나는 이 드라마를 즐겨 봤을 것이다. 아뿔싸, 그런데! 이 드라마는 작가가 심어놓은 중요한 반전으로 흔한 로코물에 쌍방구원이라는 키워드가 더해지며 깊이 있는 사랑이야기로 거듭난다.    처음엔 그저 팬이 최애를 구하기 위해 과거로 갔다가 사랑에 빠지는 단순한 타임슬립 로코물인줄 알았던 <선재 업고 튀어>는 알고보니 사실은 ‘(연예계와는 아무 상관도 없었던)과거에서부터 최애가 나를 먼저 좋아하고 있었다’는 반전을 통해 뻔한 듯한 이야기에 순애보적인 서사를 부여하고 동시에 연예인과 팬 사이의...

엄마의 품에 안긴 너, 화가 메리 카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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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ther About to Wash Her Sleepy Child, (oil on canvas, 1880), Mary Cassatt.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유치원에서 정성스럽게 아이가 만들어온 카네이션을 받으며, 해마다 그 모양새가 정교해지는 것으로 아이의 성장을 갈음한다. 색칠만 했던 카네이션은 이제 종이접기로 바뀌었고, 좀 더 크면 손 편지도 써서 주겠지.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는 매달 특정 주제에 맞는 책이나 그림을 학부모님들께 원으로 보내달라 부탁하시는데,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을 주제로 하는 책이나 그림을 요청하셨다. 그 때 생각났던 몇 명의 화가들이 있었는데 오늘 소개 할 화가가 메리 카사트이다. 그녀는 독신이었지만, 그녀의 그림은 모성애로 가득하다. 엄마가 아이를 안고 있는 그림을 보면, 그 때의 그 느낌이 다시 떠올려질 정도이니 말이다. The Child's Bath, Art Painting by Mary Cassatt Mother and Child (A Goodnight Hug), 1880 by Mary Cassatt 특히 아이를 씻기는 모습이나, 아이를 재우는 모습, 엄마 품에서 곤히 잠든 아이의 모습은 그녀 특유의 따뜻한 색감과 포근한 질감으로 표현되어 작품을 보는 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르도록 만든다. Baby John with Forefinger in His Mouth, 1910 Mother Feeding Child, 1898 아래 그림은 위 그림들과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데 동양적인 색채임을 본능적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실제로 1890년 파리에서 열린 일본 판화 전시에 영감을 받은 메리 카사트가 아래 그림처럼 기존 자신의 화풍과 다른 스타일을 보여준 것인데 마치 판화 처럼 보이게 작업한 것이 특징이다. The Bath, 1890-91 지나고보니 추억이 되고, 지나고보니 아름다웠더라고 회상하는 그 날의 기억들이 마치 장농 깊은 곳에 두었던 앨범 처럼 펼쳐진다. 메리 카사트의 그림은 나에게 꼭 그런...

범죄도시 4탄, 약속된 카타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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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지불한 돈만큼의 기대값 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확신은 굉장히 중요하다. 돈과 시간이라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한정된 자원으로 매번 도박을 할 수는 없기에, 어딜 가도 똑같은 맛과 퀄리티를 보장해 주는 유명한 프랜차이즈 식당과 카페 등의 가치가 그만큼 높은 것이다. 프차 식당을 두근두근대면서 기대하고 일부러 찾아가서 먹는 사람은 없겠지만 언제 어디서 눈에 띄어서 들어가도 최소한의 만족도를 보장해 준다. 우리는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일상에서 무수한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선택의 기회비용을 최소화하기에 딱 좋은 적당한 선택, 어느덧 4탄을 맞은 범죄도시 프랜차이즈에 대한 나의 기대값이 딱 그 정도라고 할까. 나의 두 시간과 영화 티켓 값에 대하여 통쾌한 액션과 그야말로 단순명쾌하기 그지없는 플롯으로 화답하여 약속된 도파민과 카타르시스를 제공해 준다. 그러나 프렌차이즈 음식점이라도 지점 바이 지점이라는 말도 있듯이, 특정 지점이 더 맛있다거나 없다거나 특정 지점에 어떤 알바생이 실력이 좋다거나 불친절하다거나 하는 차이점도 결국 존재하기 마련이다.  날씨가 슬슬 더워지기 시작하는 이맘때쯤 한국인들에게 찾아오는 영화로 자리를 잡은 범죄도시 시리즈 또한 프랜차이즈일지언정 시리즈마다 각각의 장단점이 없을 수 없다.  먼저 4탄에서 확연히 돋보이는 문제점은 영화 중간 즈음에 느껴지는연출 상의 지루함이다. 나는 4탄에서 감독이 바뀌었다는 것을 모르고 보러 갔음에도(사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그냥 보러 갔다) 영화 중간에 지루해지는 연출을 느꼈는데 이미 많은 영화팬들이 지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사람 생각하는 건 다 비슷하구나 느꼈고 이는 감독이 다음 번 시리즈를 연출할 때 심각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부분인 듯 싶다. 또한 중간중간의 개연성 없는 억지 전개와 에피소드들도 옥의 티다. 예를 들어서 서울시내 한복판의 경찰서에서 용의자가 심문을 받아야 하는데 아무리 경찰서 내부가 소란스러운 상황이라 한들 한낱 외...

소녀의 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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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본 소설(아마도 팬픽) 속 그런 장면이 있었다. 주인공은 준수한 외모에 직업도 훌륭해서 인기가 많은데 결혼은커녕 연애조차 관심갖지 않자, 주변에서 온갖 참견과 시비, 의심을 해대는 바람에, 결국 명품 반지를 사서 끼고 약혼한 척 한다. 앞 뒤 장면과 주인공의 운명같은 건 잘 기억나지 않고, 소녀의 마음엔 그 장면만이 오롯이 남아 로망으로 굳혀지고 말았다. 남부러울 것 없는 조건, 끝없는 관심과 그 속에서 은밀하게 감춰온 비밀, 몇백쯤 지를 수 있는 재력(이게 제일 중요함) 같은 것들. 그리하여 이젠 더 이상 사회에서 굳이 결혼 여부 혹은 남친 유무를 묻거나 소개시켜주겠다거나 하는 버거운 관심 따위 받지 않는 초연한 나이가 됐지만, 한편으론 재력은 0에 수렴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로망은 남아서 아름다운 반지를 검색해보곤 한다. 마음에 담아두었던 '언젠가 내가 약혼한척 하기 위해 사서 하고 다니고 싶은 링 리스트 탑텐' (두둥) 1. 까르띠에 저스트앵끌루 못을 동그랗게 말아놓은 듯한 모양으로 일명 '못 반지'. 70년대 뉴욕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특이한 아이디어의 디자인이라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다. 팔찌도 있고 두세번 감아놓은 것도 있고 다이아가 촘촘히 박혀있는 것도 있는데, 원형이 못 모양이다보니 과할수록 도리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얼마나 다행인지! 공홈 가장 낮은 가격 기준 189만원. 2. 까르띠에 트리니티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세 개의 링이 서로 얽혀있는 듯한 모양이다. 세 개나 있다니 너무 복부인의 왕반지스럽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스몰 사이즈는 모델이 착용한 사진을 보니 제법 라인이 날렵해 세련되어보인다. 한 번에 세가지 느낌을 모두 가질 수 있으니 개이득. 공홈 가장 낮은 가격 기준 204만원. 사실 까르띠에는 러브라인이 젤 유명하지만 나에게 그 라인은 큰 감흥을 주지 않는다. (이또한 얼마나 다행이야!) 3. 불가리 비제로원 하도 인기 많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대체 왜 인기가 많은지는 몰랐다가, ...

딱 그 기회가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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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회가 오면 잡을 줄 알아야 해." 이 말의 앞과 뒤를 연결하면 "네가 영어를 잘 해. (그럼 그 기회는) 무조건 네 거야!" 오늘의 주제는 "영어"이다. 지난 해 12월, 나는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2년 정도 수강해야 할 과목을 다 채웠을 뿐 수료가 의미하는 바는 그리 크지 않다. 유학을 간 사람들이나 국내파라할지라도 박사의 졸업 기한은 정해진 것이 없다. 그저 '경험'적으로 이야기될뿐. 대략 5~6년을 말한다. 빨라야 5년. 그것도 지도교수가 '이정도면 됐다.'라고 그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충족해야 하는데 나 스스로도 요즘은 잘 감이 오지 않는다. 특히 '졸업 후'를 생각했을 때를 상상해보면 제일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영어'. 영어로 말하고 소통하고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올해를 보내는 것이 계획인데 이를 위해서 무엇부터 어떻게 플랜을 잡아야 할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요즘 나의 영어 공부 패턴을 돌아보며, 나 스스로 지속적인 영어 공부 동기부여를 위해 그 시작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우선 나의 영어 목표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전문적인 지식과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토론이 가능한 수준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 높은(?) 나의 목표를 성취하기가 쉽지 않기에 일단 몇 가지 쉬운 단계들을 해보고 있다. 먼저 매일 지하철 여행길에서는 '플랭'앱을 애용하고 있다. https://www.plang.ai/ 생활영어 중심이기는 하지만 평소 내가 익숙하게 쓰는 표현이 무엇인지, 그것을 떠나 다르게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체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중간중간 AI 영어 비서(?)가 나의 화법을 교정해주고 동사 표현을 더 매끄럽게 바꿔주는 것도 좋은 기능이라 생각한다. 콘텐츠는 미드, 애니, 동화 등 다양한 콘텐츠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뉴스나 테드와 같이 전문적인 콘텐츠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플랭 ...

보는 것, 보이는 것, 보여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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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며칠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들이 연달아 있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잃어버린 줄 알고 새 책을 구매했는데 결국 백팩 안주머니에서 발견한 것이라든가 (어쩐지 가방이 너무 무겁다 했지), 지난 주말 불을 다 끈채 깜깜한 와중 벽에 그야말로 빡! 하고 안면부를 들이박은 것이라든가 (결국 일요일에 여는 병원을 급하게 찾아 엑스레이와 씨티를 찍고 뼈가 우그러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필라테스 수업 예약 때 달력을 잘못 보고 엉뚱한 일정으로 해놔서 몇 개 빼먹은 것 (심지어 경쟁이 치열한 쌤 수업 예약에 성공했다고 좋아해놓고!) 등등. 원래 남탓도 못하게 온전히 스스로의 어리석음만으로 촉발된 사건들의 설움이 더 큰 법이라, 잠들기 전 괜히 찌질하게 찔끔 눈물을 흘리곤 했다.  왜 나는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한 걸까. 왜 보이는 것은 보는 것과 일치하지 않을까. 인간은 보고싶은 것만을 보는가.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보이는 것은 보여주는 것보다 클까. 그렇다면 보여주는 것은 보여주지 않는 것과 어떤 차이를 보이는가. 단순한 자책이 제법 추상적인 의문으로 이어져 최근 접한 콘텐츠들과도 연관지어 생각해보았는데, 궁극적으로는 모든 텍스트를 소비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아닐까 하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보는 것, 보이는 것, 보여주는 것, 안 보여주는 것. ‘파묘’는 앞서 말한 키워드가 너무나 중요한 영화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가 더 크다. 그것의 형태는 정해져 있지 않기에 해리포터의 ‘보가트’처럼 맞춤형 공포를 선사한다. 덕분에 형체도 두려움의 한도도 제한되지 않고 최대한으로 증폭된다. 영화 속에서 그저 ‘겁나 험한’ ‘무언가’라고만 지칭될 때 관객은 각자의 상상에서 가장 흥미롭고 가장 무섭고 가장 자극적인 것을 떠올리게 된다. 후반부 무언가의 형체가 확정될 때 다소 힘이 떨어진다고 느끼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그것이 처음부터 확정적이었다면 별개 장르로서의 기대 충족이 가능하겠지...

비슷비슷한 도메스틱 스릴러 사이에서 헤매는 당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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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리소설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이른바 고전 명작이거나 진짜 내 취향 정도가 아니면 영미권의 현대 추리소설은 자주 읽지 않는 편이다 . 스릴러로 분류되는 영미권 소설들이 대부분 비슷한 내용과 컨셉이어서 대충 반 정도만 읽어도 어떤 반전일지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 특히나 ‘ 도메스틱 스릴러 ’ 로 구분되는 소설들이 그러한데 , 서구권의 중산층 가정을 배경으로 , 부인의 시점에서 겉보기에는 완벽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소름끼치는 남편의 이중적인 모습이 대부분의 반전을 차지하고 있다 .  전부는 아니지만 영미권 도메스틱 스릴러는 한참 전에 읽은 <비하인드 도어>를 비롯하여 대부분 결론적으로 '여자가 (그러한 폭력적인 남자에 맞서)다른 여자를 돕고 구원하는'  서사를 다양하게 변주한다는 점에서 일본이나 한국 추리소설보다 좀더 편안한 부분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비슷비슷한 서사의 반복이 많은 만큼   실제로 내가 분명히 읽었는데도 제목과 줄거리를 봐도 결말이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 것들도  다수이다 . 심지어 최근인데도 ! 하지만 ‘page turner’ 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스릴러 소설들답게 , 확실히 아무 생각 없이 시간 때우기에는 적격이다 . 복잡하고 어렵지 않으니 앉은 자리에서 주르륵 읽히고 , 반전과 결말이 단순명료하여 찝찝한 뒷맛도 없다 . 그리하여 이번 호 뉴스레터에서는 현생에서 스트레스가 심할 때 머리 비우고 아무 생각 없이 쭉쭉 읽기 좋있던 킬링타임용 ‘ 도메스틱 스릴러 ’ 몇몇 편을 간단히 소개해 보았다 .    허즈밴드   시크릿 제목 그대로  과거에 저지른  범죄를 숨기고 있는 듯한   남편, 그로 인하여  언뜻 보기...